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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려보내는 연습

탁함을 덜어내는 지혜

by 따뜻한 불꽃 소예

모든 번잡함을 뒤로하고, 내 망상으로부터, 그리고 형상과 색, 맛과 소리, 지나간 시간과 고정된 생각들로부터 벗어나자.


지금 나는 지난주 회사에서 겪었던 불편한 감정들을 하나씩 흘려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번뇌가 스스로 만든 관념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자꾸 마찰이 생기는 이유는, 그 순간을 순수하게 보지 못하고, 과거의 인상이나 선입견을 깔고 상대를 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자주 오해하고, 더 크게 다투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초심자'의 눈으로 보라고 말한다. 매 순간 새롭게 대하라고 한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감정의 오염물들을 흘려보내야만, 관계도 삶도 다시 숨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는 동생과 대화를 나누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내 할머니는 옛날이야기를 참 많이 하셨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후 계모들과 배다른 동생들을 돌보며 살았던 이야기, 남편과의 불화, 며느리에 대한 서운함... 한평생 같은 레퍼토리르 반복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반복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마음속에 쌓여 있던 회환과 원망이 그분을 과거에 머물게 했던 것 같다. 새로운 것이 스며들 틈 없이, 세월을 붙들고 살아내셨던 것이다. 그런 할머니를 떠올리며 나는 문득 번쩍했다. 나도 그러고 있는 건 아닐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서운했던 일, 분노했던 기억들을 끝없이 곱씹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는 그것들을 흘려보내려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기억들이, 맑은 감정들이 나에게 들어올 수 있을 테니가.


모든 것이 허깨비고, 망상이며, 한낱 꿈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안다며 내가 품고 있는 욕망도, 두려움도, 분노도 모두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들, 애써 미워했던 사람들, 깊이 두려워했던 순간들조차도, 결국은 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애써 애달파할 필요도 없고, 과거를 원망하거나, 나 자신을 비하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오늘, 비가 온다고 한다. 황사도 씻겨 내릴 테고 함께 내 마음의 번뇌와 과거의 찌꺼기도 모두 흘려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가 많이, 그리고 조용히 내려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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