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발 붙이고 사는 법
오랜만에 엄마와 데이트를 했다.
엄마가 친정 근처에 조성된 신도시 구경을 가고 싶다고 해서 엄마를 모시고 신도시에서 중국집 요리를 먹고 차를 마셨다. 엄마는 차 안에서부터 걱정을 늘어놓으셨다. 돈걱정, 자식걱정 등등 여러 가지 걱정과 지나온 세월에 대한 후회를 나에게 퍼부으셨다. 나는 원래부터 받아주는 딸이 아니기에 바로 엄마에게 그만해라고 했다. 지나온 세월을 곱씹고 후회해 봐야 머가 달라지냐고, 설령 돈이 들어온다고 해도 자식들이 그 돈 때문에 싸우면 어떡할 거냐고 등등 여러 가지 가능성들에 대해 장황하게 잔소리를 한 끝에 엄마는 알았다고 했다.
물론 나도 잘 되지 않지만, 요새는 그냥 이만하면 다행이지라는 생각을 한다. 이만하면 다행이다. 아이가 건강한 것이, 허리가 아프기는 하지만 그것 빼곤 내가 건강한 것이, 부모님이 건강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지랄 같은 상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월급 나오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위를 쳐다보면 한도 끝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그램을 보지 않는다. 어떤 작가의 말처럼 인스타그램에는 좌절과 고통이 없고 온통 기쁨만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내게 주어진 이 현실에 발 붙이고 살려면 그냥 지금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주말 오후에 맛있는 중국요리를 먹을 수 있었던 것에, 멋들어진 신도시의 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할 여유가 있었던 것에 고맙습니다 할 뿐이다. 물론 내게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곧 있으면 남편의 검진일이다. 그 때문에 남편은 예민하고 미세먼지로 운동을 나가지 못해서 남편의 컨디션은 더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밤이 되면 하염없이 슬프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눈이 떠지고, 몸이 움직여진다. 새로운 하루가 나에게 또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검진 결과가 어떻게 되든,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닥치든 그냥 지금 이 순간 살아 있으니 이만하면 다행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