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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를 심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말이야...

by 따뜻한 불꽃 소예

오늘, 사과나무를 심기로 했다.

남편의 검진일이 다가오고 있다. 암 환자들에게 이보다 더 긴장되는 날이 있을까. 지난 검진 결과가 좋지 않았기에 남편은 내심 불안해하고 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지난번에도 말했듯이 이번 결과가 어떻든, 너와 나의 내일이 완전히 달라지진 않을 거야.


어릴 적,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땐 '그럴 바엔 그냥 실컬 놀고 말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바로 그 문장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내일은 신의 영역이니까.


연휴였던 어제, 아이 없이 맞은 조용한 휴일. 나는 우리 집 뒷산에 올라 책을 읽었다. 오랜만의 평온이었다. 물론 나무에서 떨어지는 벌레들 때문에 오래 버티지는 못했지만, 잠시라도 그 시간은 행복했다. 밤이 되면 다시 불안이 밀려오지만, 아직 우리에게 하루가 있고,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박노해 시인의 시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깊이 아파본 이에게는 깊은 치유의 힘이 있다.' 참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머리 파마도 하고,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을 해보자고 했다. 나도 그럴 생각이다. 가장 밝고 화사한 옷을 입고, 이유 없이 웃어보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연습을 하는 거다.


남편은 암 투병 이후 쭈욱 쉬고 있다. 아침이면 아이와 내가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홀로 남겨진 그는 깊은 공허함과 우울에 잠긴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머뭇거리는 그 불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다시 삶의 리듬을 만들어가자고. '만약'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정말 우리는 지금을 살아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박경리 선생은 말씀하셨다.

"내일의 불행 때문에 오늘을 거부할 수는 없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그래서 우리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한다.

무엇이 되든, 지금 이 삶을 사랑해야 한다.


삶은 누군가 말했듯, 비스킷 통과 같다. 좋아하는 비스킷만 먼저 먹다 보면, 결국 남는 건 덜 좋아하는 것뿐. 그러니 괴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더 좋은 날이 남아 있겠지.'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이 순간을 견뎌내는 이유이자, 다시 사과나무를 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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