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릴 것이 없는 자의 대담함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을 읽다가, starting from scratch라는 문장을 마주했다. 저자는 어떤 일을 하든 맨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문장을 곱씹으며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바닥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과거의 노력, 경력, 나이, 체면... 스스로 만들어낸 알량한 자존심이 어느 순간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내 기준 이하의 일을 선뜻 택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돌아보면, 재작년 남편이 쓰러졌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생계를 위해 지금의 직장에 들어왔다. 완벽하게 만족스럽진 않아도, 지금 우리 가정의 경제적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감사해야 할 일이다.
고난과 위기는 사람을 재정비하게 만든다. 정신이 번쩍 들고,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지'라는 위기의식이 생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조금의 안정이 생기면 다시 두려워진다. 과연 나는 안락함을 벗어나 바닥으로 내려올 수 있을까?
얼마 전 지인과의 통화에서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언니는 나보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고, 형부는 지방에서 공무원으로 재취업했다. 하지만 언니는 주말부부의 삶과 동네 아파트 주민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피로함을 토로했다. 나는 '영어 과외나 공인중개사를 해보라'라고 조언했지만, 언니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자존심이 발목을 잡고 있는 듯했다. 반면, 내가 항상 감탄하는 또 다른 사촌 언니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빚을 대신 짊어진 사람이었다. 대학보다 생계를 먼저 생각했고,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을 땐 다시 자격증을 따서 일했고, 형부 직장 때문에 이사를 다녀도 어떤 고용형태든 일할 방법을 찾았다. 지금은 자신의 부동산 사무소까지 차렸다고 한다. 엄마는 그 언니의 생활력을 늘 칭찬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깨닫는다.
바닥을 경험해 본 사람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유학을 갔든, 대학원을 나왔든, 이력서에 그럴듯한 수식어가 있든, 결국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곳에 발을 못 들인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 물론 부모 덕분에 유학을 다녀오고, 창업도 쉽게 할 수 있는 운 좋은 친구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오히려 일단 시작해야 한다. 자존심, 체면, 눈치 보다 중요한 건 **생존의 의지와 실천**이다.
그래야 언젠가 용수철처럼 다시 솟아오를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내 대운과 나의 진짜 가능성이 맞물릴 수 있다. 어쩌면 성공이란 것도, 부귀도, 모두 허상일지 모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결국 나는 그들의 인생에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 결국 나에게 남는 건 이것이다.
"나는 남을 속이지 않았고, 내 힘으로 이 땅에서 당당히 밥벌이를 해냈다."
그 자부심 하나면 충분히 나 자신을 칭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미즈노 남보쿠는 말했다. "부는 가난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 가난을 아는 사람만이 부를 오래 지킨다."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 본 사람만이 두려움 없는 도전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나도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내 삶은 허상이 아닌, 나의 손으로 만들어 나갈 진짜 현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