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화와 마주하다
시간이 갈수록 내 안의 화가 점점 많아지는 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전보다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기에 거기에서 비롯된 어떤 응축된 화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에는 부모님과, 친구와 다투었을 때 화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면, 기존의 인간관계에 플러스로 남편, 시댁식구들, 직장생활, 그리고 회사 상사, 돌아와 시댁 이렇게 화가 난다.
흠, 이전에 법륜스님께서 자식이 20세가 넘으면 무조건 내보내야 하며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성인이 되어 내 부모도 아닌 배우자의 부모 형제와 부딪히며 겪는 마음부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특출 나게 공감 능력이 있는 시부모나 시누이가 아니라면 그다지 나의 상태나 내 마음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지난주 나는 어머니를 댁으로 모셔다 드리면서 큰 형님이 그 사이비 중에게서 듣고 온 사주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런 이야기 듣는 게 불편하다고, 안 그래도 힘든데 그런 거 듣는 거 기분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이건 내 기분이니 아직까지는 형님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내 입 밖으로 나간 말은 이미 내 통제밖의 상황이다. 어머니는 당연히 형님들에게 말했고, 그날 나는 시누이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들은 자기 동생이 걱정되어서 그런 거라고 '조심하면' 되지 않냐고 했다. 가령 아이가 학교에서 다치고 왔다. 그게 내가 조심한다고 그 일이 발생하지 않을까? 나도 사주와 점을 좋아하지만 그것에는 맹점이 있다. 가령 올해 상복수가 있겠어라고 얘기를 들었다. 내가 그걸 피할 수 있을까? 그냥 기분만 찜찜하지 집안에 누군가 돌아가신다는 뉴스를 듣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기분만 더러울 뿐이다. 무엇을 조심시킬 수 있을까? 인간의 생로병사에 있어 사주와 점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시어머니는 자기 딸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 것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자기는 어떠냐고 자식이 아프지 않으냐고 그러니 자기들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공감과 이해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매우 화가 났지만, 오트밀라테를 마시며 내 마음의 화를 달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나 스스로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로 말이다. 나에게 몇 가지 불편한 상황들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건강하다. 내 부모님은 건강하시고 다행히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신다. 내 아이는 건강하다. 내가 시댁식구들에게 '이해받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사실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가지기에, 그들이 생각하기엔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게 바로 내가 꽤 괜찮은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난 괜찮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경험"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그것이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삶의 일부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우리 안팎으로 일어나는 일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언제나 매 순간, 매 사건의 의미를 해석한다. 요점은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from 신경 끄기의 기술
요즘 읽고 있는 이 책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고 있다. 포커게임을 해본 적은 없지만, 포커게임에서 좋은 패를 가지고 있다고 반드시 경기에서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한다. 그 카드를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위험을 지고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경기의 승패가 갈린다고 한다.
명심하라, 외부환경이 어떠하건 간에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경험에 책임이 있다.
from 신경 끄기의 기술
남이 이해해주지 않는다라며 피해자 코스프레 따위는 집어치우자. 나는 남의 동정과 연민을 받을 만큼의 처지가 아니기에 공감을 사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 안의 화가 사라졌다.
덧붙여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부정적 감정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능력이다. 내가 느끼는 모든 부정적 감정에 대해 최대한 무너지지 않은 상태로 남에게 내 불편한 상황을 전달해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을 해결하려고 해야지, 내 감정을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어차피 타인이 내가 겪는 불편한 상황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란 '아휴', '어쩌지'또는 자동반사적 자기 변명 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인은 그것이 부모, 형제, 배우자라 할지라도 내 감정의 분출구가 될 수 없다. 결론은 습관적으로 하소연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