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화와 마주하다
시간이 갈수록 내 안의 화가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이전보다 더 많은 인간관계를 맺으며 생겨난 응축된 화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친구와 다투며 화가 생겼지만, 나이가 들면서서는 남편, 시댁 식구들, 직장까지 관계는 늘어나고 화는 더 깊어진다.
얼마 전 시댁에서 사주 이야기가 나왔다. "올해 남편이 몇 월에 조심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불편했다. 인간의 생로병사 앞에서 조심이란 무의미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다쳐 돌아오는 일조차 조심으로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주와 점은 흥미롭지만, 그 자체로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다. 결국 남는 건 기분 나쁨뿐이었다.
그날 나는 화가 치밀었지만, 오트밀라테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며 다짐했다.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자. 나는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부모님과 아이가 건강하며,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시댁 식구들에게 "이해받기를" 기대하는 건 애초에 무의미하다. 사실 사람은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잇는 이에게 연민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들이 나를 동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꽤 괜찮은 상황에 있다는 뜻이다.
최근 읽고 있는 [신경 끄기의 기술]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우리한테 일어나는 일을 우리가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리고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언제나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
삶은 포커게임과도 같다. 좋은 패를 쥐었다고 반드시 이기는 건 아니고, 나쁜 패를 쥐었다고 반드시 지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주어진 패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이다. 내가 받은 패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책임지고 결정하는 건 오롯이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피해자처럼 굴지 않기로 했다. 남의 동정과 연민을 구걸할 만큼 불쌍한 처지가 아니며, 이해받지 못한다고 화낼 필요도 없다. 내 안의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결국 내 책임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덧붙여, 누구나 자기 안의 부정적 감정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능력이다. 내 감정을 남에게 하소연하는 대신, 차분히 전달하고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는 태도가 필요하다. 타인은 결코 내 감정의 분출구가 될 수 없다. 부모든, 형제든, 배우자든 마찬가지다. 결국 답은 명확하다. 습관적으로 하소연하지 말자. 내 화는 내가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경험"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그것이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것은 삶의 일부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우리 안팎으로 일어나는 일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언제나 매 순간, 매 사건의 의미를 해석한다. 요점은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from 신경 끄기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