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 학교에서 전화를 받고 나서 충격에 빠졌다. 아이의 잘못된 습관으로 학부모들의 클레임이 들어왔고 이 습관을 빨리 교정해 주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따끔한 조언이 있었다. 그런 조언을 해 주신 선생님께는 감사했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자아계발을 위한 어머니의 직장생활은 존중하지만 아이에게 좀 더 신경을 써달라는 말이 다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는 자아계발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가는 것이고 집에 병든 남편으로 심리적 버퍼가 많지 않아 아이에게 소홀했다. 하지만, 선생님에게 미주알고주알 내 상황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제 불찰이 컸습니다. 제가 아이 교육을 좀 더 철저히 시키겠습니다." 휴우 참 무거운 하루였다. 그래 무엇이 되었건 현재는 내 행동의 결과이고 내 책임이다.
나에겐 아이를 전적으로 케어할 심리적, 경제적, 신체적 자본이 부족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원인을 찾고 대응책을 만들어 실천해서 관찰해 보면 된다. 삶이란 결국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일 뿐이니 말이다.
일단, 아이에게 모든 영상매체중독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유튜브 시청을 금지시킬 것이다. 두 번째는 몸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하루 30분씩 이야기를 해야겠다. 세 번째는 아이에게 지적과 평가보다는 공감을 해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이런 다짐을 하고 어제 아이와 노는데, 그 시간이 참 지겨웠다. 남편은 나에게 굉장히 어색하고 서툴다고 했다. well, 나 역시 우리 부모와 그렇게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어쩌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밖에...
한편으론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면 연락이 오는 현실이 다소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 역시 아이가 학교에서 이마를 다쳐 꿰매는 사건이 일어났지만 내 아이의 불찰이고 안전교육에 더 신경 쓰겠다고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모든 학부모가 그런 것도 아니니, 내가 그렇다고 남도 그렇게 해주겠지라며 바랄 순 없다. 어쨌든 내 아이의 문제이니 내가 해결해 나가야 한다.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높이 나아가려면 무조건 여유, 여유, 여유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커피숍 앞에 어떤 제네시스차가 주차를 잘못해서 통행에 문제가 발생했다. 나는 안 그래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길에 커피를 사가야 하는 상황이라 내 마음에도 여유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확 짜증이 올라왔다. 그리고, 커피숍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던 중 남편과의 통화에서 누가 주차를 이상하게 해 가지고 짜증이 났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내 앞의 여자 손님이 주차를 이상하게 한 모양이었다. 분명 그 여자손님이 주차를 다른 사람 배려 없이 한 것은 팩트이지만, 굳이 내가 그 잘못을 지적해야 했을까라는 반성이 올라왔다.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 나 또한 관대하지 못했다, 여유가 없었다.
'당신이 잘못했잖아'가 아니라 농담으로 슬며시 그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일깨워줄 수 있도록 하지만 무안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스킬이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한 거 같다.
그래서 여유, 여유, 여유를 생각해 봐야겠다. 내 삶이 행복하고 여유가 있다면, 나에게 심리적, 문화적, 신체적, 언어적 자본이 충만하다면 나는 남에게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일이 적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타인의 실수나 행위는 너무 아무 일도 아니다. 그 자신의 삶 자체가 충만하며 행복하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우리의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 by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자신과 조화롭게 사는 사람은 우주와 조화롭게 산다. by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