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로 한주가 먹구름이었고 힘들었다. 그 여파가 오롯이 아이에게 전달된 거 같아 미안함이 가득했다. 남편도 5월 종소세 시즌에는 일을 하기로 해서 바빴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아이와 집 밖을 나서기로 했다. 나가자!
세상은 초록으로 가득 찼고 흥이 넘쳤다. 아이와 아이가 좋아하는 바다로 향했다. 바다에는 서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이는 연신 넘실거리는 파도에 발을 담그며 즐거워했다. 그냥 좋았다. 젊은 연인들은 서핑을 하며 사랑을 키워나갔고, 가족/친구 단위로 온 사람들도 해변에서 여유롭게 선탠을 하든, 비치볼을 하든 여유를 즐기는 듯 보였다. 참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했구먼, 예전에는 이런 분위기까지는 아니었는데...
무튼,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라 해운대 모래축제구경이었기에, 아이와 송정 해변열차를 타러 갔다. 해변열차를 처음 타봤는데, 엄마는 즐거웠지만, 아이는 게임에만 빠져있었다. 에휴~ㅠㅠ문득,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저들은 어떻게 다들 건강한 남편을 두었을까? 왜 나는 이렇게 혼자서 아등바등하나, 내 삶에 고통이 가득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왜 삶은 나아진다고 여겨지지 않을까? 자괴감, 자기 비하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갔다.
그런데, 미포역에 내려 번잡한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조금씩 살아났다. 아이와 시원한 음료와 케이크도 먹고, 해변에서 장장 1시간이나 기다려 샌드보드도 타고 말이다. 그 긴 줄을 기다리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너 정말 저 긴 줄을 기다릴 수 있겠어? 그랬더니, 기다리겠다고 한다. 긴~~~ 기다림 끝에 아이는 자기 몸보다 큰 보드를 이어 메고 모래산 위를 올라가서 신나게 보드를 탔다. 그 모습을 보며, 좋은 것에는 항상 기다림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몰랐던 게 아니라 잊고 있었던 거다. 그래 모든 좋은 일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 말이다.
요즘 '신경 끄기 기술'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문제없는 삶은 없다. 대신 좋은 문제로 가득 찬 삶을 꾸어야 한다. 행복하려면 문제를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
삶이 쉬울 순 없다. 물론 허상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쉽게 사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숙제와 과제가 있을 것이다. 우린 단지, 사람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이며 '괜찮은 척'하며 여행하고, 사치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고통이 없는 삶은 사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기기만이거나 정신착란일 뿐.
송정으로 돌아오는 해변열차에서는 아이는 꾸벅꾸벅 졸았다. 이 아름다운 풍광과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 관광객들의 부산스러운 모습들 이 모든 장면들이 현실이 아닌 듯 느껴졌다. 그래 그냥 이게 삶이야. 비극 속에서도 희극이 있고, 희극 속에서도 비극이 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그냥 삶은 콤비네이션 피자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슬픈 것도 있는 온갖 희로애락으로 다 토핑 되어 있는 피자 한판일 뿐이다. 남편이 암에 걸린 것, 직장상사가 미친놈인 것은 물론 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대응해야 한다. 그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신경 쓰며 그냥 살아가는 거라는 것을 열차 안에서 깨달았다.
내가 견디는 고통이 바로 내 삶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건 분명 멋진 결과물일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든다.
내 또라이 상사에 관하여: 내 직장에는파콰드 영주 같은 상사가 있다. 키가 작은 사람이 모두 그런 콤플렉스를 가졌다고 볼 순 없지만, 그의 신체적 특징(평균이하의 키)은 분명 그의 캐릭터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거 같다. 무튼, 그 상사는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군림하려고 하고 자기의 실체보다 더 과하게 아는 체, 영어를 잘하는 체, 돈이 많은 체를 한다. 자기 무릎만 한 키높이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듯한 지나친 ECO를 가진 자이다. 누구라도 자기에게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며 바로 적으로 간주하고 자신의 작은 왕국에서 졸개를 이용해 자신의 적이라 간주한 사람을 괴롭힌다. 그의 세상은 아군과 적으로 나뉘어져있다. "Mirror, mirror on the wall, is this not the most perfect kingdom of them all?" 거울아 거울아 내 왕국이 최고 지라는 주문을 외치며 직장에 출근하는 듯하는 역겨운 캐릭터의 소유자이다. 물론 그가 또라이인것이 내 삶에 불편한 상황일 뿐 전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 왜냐하면 NOT GIVING A SHIT ON YOU 너 따위에 절대 신경 안 쓸 거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