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이 가득한 4월이다. 시골 주택으로 오니 좋은 점은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맨땅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우리 집 앞 작은 화단에는 이전 주인이 심어둔 수선화와 작약이 새순을 틔우더니 수선화는 벌써 노란색 예쁜 자태를 선보이다 이젠 시들어가고, 작약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집 뒤 산에도 진달래가 피고, 아카시아 나무와 이름을 아직 모르는 나무들이 새순을 틔우고 그 자태를 보여주려고 한창 크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봄이다. 내가 봄을 이렇게 감사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 작은 텃밭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나는 과연 이 인생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가? 잘살고 있는가?
최근 회사에서 회식을 하다, 사무실에서 얼굴만 마주쳤던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 이 사람은 삶이라는 토양에 참 뿌리를 잘 내리신 분이구나, 자기의 삶을 사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회사에서 각종 허드렛일을 하시지만, 단단하게 그 일을 해 내시고 혹여 누군가가 자기에게 함부로 하려고 하면 단호히 그것을 지적하여 자신을 보호하신다. 친절하지만 단호함을 같이 가지신 분이다. 그분은 주말에는 농장에서 텃밭을 가꾸시고 일요일 아침이면 정성스레 식사를 준비하여 가족들과 함께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침 준비과정이 행복하고 즐거우시다고 하는데 그 말씀이 진심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사람은 우리 회사의 관리자인데, 그 사람은 나의 남편이 무엇을 하는지 집은 어딘지 궁금해하며 항상 남의 뒤를 캐려는 성향을 가졌다. 그 사람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안되고 측은한 사람이다. 물질적으로나, 나이로나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위이지만, 그 사람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자신의 삶에서 표류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남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고, 남에게 자신의 차는 무엇인지 재산이 얼마인지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하지 못하고 남들로부터 끊임없이 자기를 확인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에 확실하게 뿌리내린 사람은 남이 자기보다 잘 나가던지 영어를 더 잘하던지 돈이 더 많던지 직책이 더 높던지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의 기준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에 세상의 평가와 기준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만약 남편이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그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불행은 희한하게도 사람을 보는 관점 아니 내 인생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세상이 정한 기준과 물질적인 부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을 수 있는지, 그 신기루만 쫓고 나 자신을 그리고 주변을 돌보지 못하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이 모든 시련을 겪으면서 나는 드디어 내 언어로 내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감사하다.
최근에 헤르만 헤세의 'If war gooes on..'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이라는 책에서 지금의 상황에 잘 들어맞는 구절을 읽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장에서 돌아온 피폐한 젊은 청년들은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경외심에 가득 차 그를 졸졸 쫒았다니며 어떤 조언을 듣고자 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그들에게 어떤 조언이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계속 한가로운 이야기만 했다. 그러자 한 어린 청년이 차라투스트라에게 화내면서 지금 한가로이 그런 말을 하고 당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 재밌습니까? 중략 우리는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합니다. 그러자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본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차라투스트라로 존재하는 것을 배웠듯이 너희들도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너희들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어도 안되고,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다른 사람의 얼굴을 자기 얼굴로 생각해서도 안된다.
You must learn to be yourselves, just as I have learned to be Zarathustra. you must unlearn the habit of being someone else or nothing at all, of imitating the voices of others and mistaking the faces of others for your own. - Therefore, my friends, when Zarathustra speaks to you, look for no wisdom, no arts, no formulas, no Pied Piper's tricks in his words, look for the man himself."
우리는 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무엇인가를 찾고 또 누군가의 말씀을 찾아 경외하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니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라. 다른 이가 되려고 한다던지 다른 이의 목소리를 흉내 내려고 하지 말고 차라투스트라에게 배워야 할 단 한 가지는 바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아닌 어떤 존재나 사회가 주는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의 삶에 두 발로 당당히 혹은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