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를 모아 모아 정말 중요한 일에만 쓰세요. 그리고 남편 아직 옆에 있잖아요. 그러니 그것만 생각해요, 아직 옆에 있으니깐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하지 말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정신이 들었다. 그래 맞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내 곁에는 남편과 아이가 있다. 상황에 매몰되어 '왜 나만'이라는 억울함에 빠지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불현듯 찾아오는 불행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아침은 일찍 일어나 뒷산에 올랐다. 올라가다 보니, 안개 사이로 강렬하게 비치는 아침 햇살이 눈앞에 펼쳐졌다. 순간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저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햇살이 내 얼굴을 비추고,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고통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지인처럼, 내가 겪고 있는 이 시간들이 나를 더 강하고 깊이 있는 어른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버텨내면 된다. 문득, 박경리 선생님의 시가 떠오랐다.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다 가고
감정의 탄력도 느슨해져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무덤덤하며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빚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
외로움에도 이력이 나서 견딜 만하다
그러나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박경리 선생님의 천성 中
나는 할머니가 되었을 때 박경리 선생님처럼 세상의 아픔을 관조하며 따끔하게 조언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스스로 농사지으며 대지의 사랑을 느끼고,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내 힘으로 농사지으며, 대지의 사랑을 느끼고, "이 놀고먹는 족속들아 생각 좀 해"라고 소리칠 수 있는 그런 어른.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나는 지금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지금 내 옆에는 소중한 가족들이 있고, 집 뒤편에는 나를 위로해 주는 숲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