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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적이라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요

콩나물국 앞에서 깨닫는 나의 나약함

by 따뜻한 불꽃 소예

"삶은 기적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박노해 시인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집어 들었다.

"삶은 기적이다"라는 구절이 가슴에 박혔다. 하지만 나는 나약함을 실감한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아이를 마주하면 짜증이 밀려오고, 맘에 없는 말을 쏟아낸다. 우리 아이는 나를 닮아 고집이 세다. 대견하면서도 육아는 더 벅차다. 박노해 시인의 어머니는 다섯 자녀를 홀로 키우셨는데, 나는 한 아이를 키우며 왜 이리 힘겨운 걸까.


친구도 직장과 육아의 무게에 지친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고난 속에서 흔들린다. 남편의 건강문제, 끝없는 집안일은 나를 짓누른다. 아침, 뒷산 절에서 기도했다.

"제발 남편이 건강을 되찾게 해주세요. 나를 현명하게 만들어주세요."

문득 생각했다.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까." 어쩌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기댈 곳 없는 자들의 마지막 종착지. 나도 그들처럼 그런 간절함 속에 서 있다.


그런데 박노해는 말한다. "인생은 좋은 것입니다." 삶은 기적이라고 한다. 숨 쉬는 이 순간이 기적이라면, 나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만은 꺾이지 말아야 한다.


그날 저녁, 부엌에서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는 또 화를 누르지 못했다. 그 순간의 마음을 시로 적어 보았다.


콩나물국 (자작시)


퇴근 후 부엌 싱크대에 서면,

화가 난다.

콩나물 다듬다 보면,

울컥, 또 화가 오른다.


아이는 유튜브 보며 깔깔대고,

나는 펄펄 끓고 있는 콩나물 국처럼

속에서 화가 끓어오른다.


웃음은 좋은 거라지만,

아이의 웃음소리에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엄마노릇도, 직장인 노릇도

뭐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가

결국 콩나물을 다듬다

아이에게 화를 쏟아낸다.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모난 엄마가 낳은 아이는

더 큰 소리로 대꾸하며 대든다.


이도 저도 아닌 나는

다시 콩나물을 다듬으며

이도 저도 아닌 콩나물국을 끓여낸다.


그러나 그 국물 속에서

오늘을 버틸 힘을

한 숟갈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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