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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불꽃 소예
Jun 22. 2023
박노해 님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읽고 있다. 삶은 기적이다. 이 구절 때문에 이 시집을 집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즈음, 내가 얼마나 멘탈이 약한지 실감하게 된다. 위기 속에서 자신의 면모가 드러난다고 하는데, 나란 사람은 정말 나약하구나. 아이에게 현명하고 강한 엄마가 되고 싶지만, 퇴근 후 아이가 내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을 때 짜증이 나고 맘에도 없는 말들을 쏟아낸다. 우리 아이도 엄마의 모난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았는지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하고 쉽게 꺾이지 않는다. 그래서 난 육아에 늘 힘이 부친다.
박노해 님의 시집을 읽노라면, 그의 어머니는 5명의 자식을 홀로 훌륭히 잘 키우셨다던데, 나는 겨우 1명 키우는데도 이렇게 힘에 부치는 걸까 하며 한없이 작아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강인한 어머니의 힘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자기 전 시집을 펼쳐보니 이런 구절이 나왔다.
"인생은 좋은 것입니다.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해요."
전쟁터에 나간 것도, 독립투사가 되어 싸우고 있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이리 내 삶이 고달프게 여겨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땅에서 나답게 성질부리며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난 왜 이리 매일매일이 힘들게 여겨지는지 참 한심한 노릇이다.
오늘 아침도 출근 전 뒷산에 있는 절에 올라가 기도를 드렸다. 부디 내가 좀 더 현명하게 이 상황을 잘 버틸 수 있게 해달라고, 내 남편이 제발 건강해지길 바란다고 간절히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는 그런 날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이들은 전쟁터의 난민이나, 나라 잃은 자와 같이 누가 봐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이들인데 말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더 이상 기도 드리지 않는 바로 그날이 오면 좋겠다.
막상 기도를 드려보니 알겠다. 기도를 간절히 드리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은 어떤 영험한 존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 역시 내 인생이 이토록 뿌리째 흔들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간절하게 각종 사찰들을 찾아다니며 기도드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기댈 곳 없는 자들의 마지막 종착지인 거다.
무엇이 되었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도 인생은 좋은 것이라고 말하니, 내게 주어진 이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지 다시금 다짐한다. 내가 이렇게 숨 쉬고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유튜브 쇼츠를 보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랬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말고 끝까지 달려보자.
콩나물국 자작시
퇴근 후 부엌 싱크대에 서면 화가 난다.
콩나물 다듬다 울컥 또 화가 오른다.
아이는 유튜브 보며 킬킬대고,
나는 펄펄 끓고 있는 콩나물 국처럼 아이의 낄낄대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웃으면 좋은 거랬는데, 아이의 낄낄대는 모습에 화가 난다.
엄마노릇, 직장인노릇 머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나는 콩나물 다듬다 벌컥 아이에게 화를 쏟아낸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더니,
모난 엄마가 낳은 아이는 내 고함에 더 큰 소리로 대꾸하며 대든다.
이도저도 아닌 나는 다시 콩나물을 다듬으며 이도저도 아닌 콩나물국을 끓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