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저렇게 된 이후 시어머니가 싫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분명 가혹한 삶의 희생자일지도 모르지만, 내 좁은 마음에서는 남편을 저렇게 만든 장본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말에는 은연중 그런 원망이 녹아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면 알뜰히 본인이 드실 약초를 캐서 가시고, 또 심는다. 그리고 전화통화를 할 때에는 아들 걱정이 된다고 아우성치시다가 정작 우리 집에 오면 텃밭으로 나가신다. 남편은 '우리 엄마는 내 걱정 보다, 우리 집에 텃밭 하러 오나 봐'라고 말한다. 나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라 어머니가 미워 보였다. 아는 동생과 이야기를 하다 어머니는 그냥 문제를 '회피'하려고 그러시는 거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흠... 회피라... 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말기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했던 그 순간에도 우리 집에 와서 자기 큰딸이 남편과 싸운 이야기, 큰 딸의 말 안 듣는 딸내미들 이야기를 털어놓으신 분이다. 난 정말 그런 그녀를 그리고 시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어머니 입장에서는 큰 시누이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거기엔 정말 자기 잘못이 없다. 큰 시누이가 남편과 싸운 이야기는 사위를 욕하면 그만이고, 말 안 듣는 손녀이야기도 역시 손녀 탓하면 그만이다. 그런 문제들은 그녀가 감당하기 가벼운 문제이기에 우리 집에서 그런 것들을 쏟아 내셨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다. 남편은 20대부터 아팠다. 그래서, 그게 자기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인정은 하기 싫지만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하면 그걸 어머니는 감당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회피하려고 하는 거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불화했던 부부생활, 평생 남편을 향해 내뱉은 원망과 미움의 말들이 돌고 돌아 자식에게 갔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와서 내가 굳이 그렇게 얄밉게 그걸 지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알고 있을지 모르기에, 그리고 설령 모른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아마 나처럼 자다가 이불 킥하면서 내가 왜 그랬지 하고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한때 미워했던 파콰드 역시, 내가 왜 그렇게 치졸했을까? 유치하고 미성숙하게 행동했을까 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라서 문제이지만...
어차피 나에게서 나간 것은 모두 다 나에게 돌아온다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원망 돋친 말을 내뱉는다 한들 한순간 기분이 시원해진다고 해도 그건 결국 나에게 더 큰 스트레스로 돌아온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았기에, 그냥 그런 원망도 미움도 놓아주기로 했다. 그녀 역시 가혹한 운명의 피해자일 뿐이다. 파콰드 역시, 이제는 미워하지 않는다. 단지, 무리수를 계속 두는 그가 측은하게 보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거대한 운명 앞에 풍전등화와 같은 그런 미약한 존재들이다. 언제 꺼질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남을 덜 미워하고 더 이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내뿜을 수 있기를, 그래야 밤에 잘 때 이불킥을 덜 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나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을 정도만, 딱 그 정도만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다면, 범인(凡人)인 내가 위대한 화가처럼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고 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내 삶에 있어 남에 대한 원망과 미움 그 딴거 말고 그거보단 좀 더 나은 것을 세상에 내놓을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나는 그걸로 족하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