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주택에 살다 보니, 아이를 여기서 계속 키워도 되나라는 고민이 커졌다. 아이의 교우관계나, 학교생활 문제등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 그래서 내가 도시로 이사를 나가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던 중 아이와 근처 놀이터로 나가서 다른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내 걱정과 우려와 달리 아이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였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 역시,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조선미 정신과 교수님의 강의를 시청하다 문득 '내 육아방식이 아이가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내도록 교육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문제가 생기면 단순히 증상만을 없애려고 급급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이 올라왔다.
강의 내용 중
"세상에는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할 일이 있음을 가르쳐라."
"실수로 인한 고통을 겪게 하라."
내가 이런 점들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아이가 싫어한다고 힘들어한다고 해야 할 일들을 피하게 내버려 뒀던 것은 아닐까라는 반성이 올라왔다. 힘든 일은 원래 힘든 법이고 힘들어야 성장할 수 있음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 힘들어한다고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을 자꾸 만들어주게 되다 보면 아이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더 큰 좌절과 실패로 인한 고통을 견뎌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확 올라왔다. 힘든 일을 해내고 하고 싶은 일을 참아내는 성숙함을 가르쳐야 아이가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나를 되돌아봤다. 과연 나는 싫어도 해야 할 일들을 잘해 내고 있는지 그리고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할 일들을 잘 참고 있는지 말이다. 어쩌면 내가 세상에서 겪는 고통들 중 상당수는 바로 싫어하는 일들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자꾸만 그런 고통을 피하며 살다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하는 후회가 올라왔다. 지금부터라도 의식적으로 싫어하는 일들을 더 많이 해 내고, 하고 싶은 일들을 조금씩 더 참으면서 살아봐야겠다. 이런 태도는 분명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인생의 정체구간을 슬기롭게 지나가도록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 자신을 다스리고 가다듬다 보면 결국엔 이 정체구간을 지나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 구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