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꼿꼿이 세우고 용기 있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
모처럼 미술관 나들이에 나섰다. 계획된 여정은 아니었지만, 짬을 내어 들른 부산시립미술관은 언제나처럼 나에게 생각의 여백을 선물했다. 나는 미술에 대한 조예는 없지만, 이런 나들이는 늘 반갑고 감사하다.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소장품 기획전 영점'(Zero Point)**이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 전시에서는 미술관이 오랜 기간 수집해 온 소장품들을 연대기별로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실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전쟁 직후를 담은 흑백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속 피난민들의 모습, 텅 빈 눈동자, 뼈만 남은 손...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 세대가 살아낸 그 가난하고 참혹했던 시절의 풍경이 거기 있었다.
'아, 우리나라에도 저런 때가 있었지.'
모두가 생존만을 위해 버텨야 했던 시절.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딛고 있는 바로 그 시간의 밑바닥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2023년 7월을 살아가고 있지만,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어 살 수 없다는 것을 미술관 한켠에서 또 한 번 절감했다. 삶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다. 종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쌓이고 겹쳐져, 오늘이라는 하루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험한 시대를 견뎌낸 선조들의 강인한 생존력, 질긴 근성이 내 안에도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고개 숙이지 말자. 울더라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히 일어서자.
아마도 나는,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이미 유산처럼 물려받은 사람일지 모른다.
때로는 삶이 시궁창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저 시절에도 웃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던 것처럼, 나의 삶에도 다시금 햇살 가득한 날들이 올 것이다. 그러니, 힘내자.
미술관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전시장 사진들을 아이와 함께 보았다.
"우리나라도 저런 시절이 있었단다. 그래서 너처럼 깨끗한 종이, 물, 전기, 밥 한 그릇..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거야."
말끝에 '밥 좀 남기지 말라'는 잔소리가 따라붙긴 했지만, 나는 아이에게 역사의 맥락을 가르치고 싶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소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또 하나의 작품은 옥포조선소 노동자들의 퇴근길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며 시아버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님도 저런 모습으로 귀가하셨겠구나..."
그 생각이 드니, 나 역시 오늘 하루를 더 성실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들었다.
또 다른 작품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가족을 잃은 이의 슬픔을 담은 그림이었다.
잔인한 역사의 광풍 속에서 희생된 사람들. 그들을 기억하며, 나는 가슴 깊이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그렇게 오늘 하루, 나는 미술관에서 삶과 예술, 역사와 나 자신을 연결하는 조용한 사색을 했다.
아마도 **예술의 순 기능은 '공감'**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와, 나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인 누군가와도 마음을 잇게 해주는, 그 위대한 힘.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가까이하라고 배우는 것 아닐까.
끝으로 나는 다짐했다.
나는 결코 과거를 지우고 영점(Zero Point)에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위에 쌓아 올려진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그 강인한 마음과 지혜로 남은 시간을 더 뜨겁고, 단단하게 살아내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