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After
오늘은 남편이 검진결과를 들으러 설로 가는 날이다. 새벽부터 부산스럽게 준비를 해서 남편은 서울로 올라갔다. 두근두근 나 역시 긴장이 되었다. 막 의사와의 면담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은 내게 검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암이 조금 더 커진 거 같다고 한다.
남편은 실망했지만, 나는 남편에게 지금 당신이 살아있고 니 발로 걸어 다니고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기적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 흉수가 차지 않았기에, 이게 신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검사는 단지 지금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지 미래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국면이 점진적(progreesive) 일 거라 생각한다. A라는 단계에서 B로 그리고 C로 차츰차츰.. 하지만,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인생은 똥멍청이 같다는 것을 말이다. A에서 D마이너스로 떨어질 수도 그리고 Z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불확실성이 가득한 곳에 살고 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금강경을 읽고 있다. 금강경에서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한다. 말에 얽매이지 말고, 말이 표현하는 대상을 보라고 하는 구절을 오늘 읽었다. 참으로 다가오는 표현이다. 검진결과의 말로 인해서 절망을 연상할 것이 아니라, 그냥 더 '정신'차리라는 각성의 계기로 삼고, 그럼에도 아직 내가 내 발로 걸어 다니고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기적이니 한번 더 해보자로 받아들인다면, '암'의 크기가 커졌습니다' 그 말에 필요 이상의 공포와 해석을 부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암에 걸려본 사람은 안다. 그 말 한마디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검진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어쩌면 몸 안에 암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지금 발견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단지 어떤 대상을 특정 언어로 규정한 뒤에, 그 언어와 유착된 여러 가지 이미지/ 암울한 예측을 결부시켜 버린다. 그래서 때론 그 말 한마디로 내 상황이 갑자기 더 어둡고 절망적이라 생각된다. 암환자가 아니라도 내일 교통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심장마비로 갑자기 하늘나라로 갈 수도 있는 데도 말이다.
본질은 그 말 자체가 아니다. 암에 걸렸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그 사람이 파괴적인 삶의 행태를 해왔고 몸이 더 이상 그런 파괴적 행태의 삶의 자세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그러니 그것을 제발 고치라는 징조라고 해석한다.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기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린 그냥 가는 거다. 지금에서야,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I can't go on. I'll go on. 지금 현재, 이 순간에 머무르며,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을 기적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다 보면 진짜 기대했던 기적이 올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상을 보라.
말에 얽매이지 말고, 말이 표현하는 대상을 보라.
언어와 언어가 만들어 낸 요란한 왕국에 정신을 빼앗기면 진실을 놓치고 만다.
금강경 마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