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을 내려놓는 연습
출근 중 남편과 대화를 하다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남편은 지난 2년간 내가 말해왔던 것들을 이제야 큰 깨달음이 온 거처럼 하나씩 하고 있다. 그래서 속으로 너무 열이 받았다. 명상을 통해 자기 안의 마음을 치유해 보라는 것, 보충제를 복용해서 몸의 전반적인 컨디션을 올려보자는 것 등등 내가 열을 올리며 말했던 것들을 이제야 하기 시작한 모습에 넌 왜 이렇게 느리니, 지난 2년은 뭐야라는 분노. 이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이다.
오늘은 내가 약간은 짜증 섞인 말투로 왜 진통제를 처방받지 않느냐고 말했다. 남편은 뼈전이로 인한 통증으로 잠을 자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예전부터 진통제를 복용해 보라고, 의사 선생님께 처방받아라고 말했지만, 그는 듣질 않았다. 진통제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늘어놓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더 강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 그냥 내버려 뒀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봤다. 정말 좋은 말이 나오기 힘든 관계였다. 은연중에 아마 내가 손해 봤다는, 너 때문에 내 팔자 꼬였다는 그런 생각이 비쳐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말은 직접적으로 안 했지만, 너 때문에 내가 불행해졌어, 너 정말 너무 별로야라고 그런 뉘앙스의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부부 사이에 비난과 냉소가 빠지면 섭섭할지도....
그러다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내가 그 아이에게 '너 별로야, 고집불통이야, 왜 이렇게 늦니? 지난 2년 동안 도대체 뭘 한 거야?'라고 비난을 해버린다고 지난 2년이 다시 새로이 내게 돌아올까? 내 상황이 더 개선이 될까?... 아니다.
생각해 보니, 암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지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병원 결과가 나오기 전,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혹시 애비가 검진 결과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절대 내색하지 말라고 대신 너 정말 잘해왔다고, 엄마가 볼 때는 너 너무 잘하고 있다고 응원을 해주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보단 지네 엄마에게 받는 위로가 더 큰 힘으로 느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머니께서는 남편의 전화에 엄청난 지지를 해줬고, 남편은 나에게 우리 엄마가 이상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남편이 미웠던 이유가 뭘까? 왜 저런 사람을 만났을까하는 자책을 하고 항상 부정적 감정이 올라왔을까?
나는 남편의 모습에서 엄마를 발견했다. 그리고 엄마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무능한 남편을 만나 평생 가장으로서 사셨던 한 많은 분이다. 그래서 그녀의 기본 정서는 항상 짜증과 비난이었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우리 엄마의 항상 짜증 섞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나 역시도 우리 엄마의 비난하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우리가 유년시절 해결하지 못한 어떤 관계를 해결하려고 특정인에 끌린다고 한다. 그래서, 지지리 남자복 없는 여자들을 쫓아가보면 아빠가 이상하다거나 불우한 가정환경에 컸다는 등의 숨은 배경이 있다.. 흠..
무엇이 되었건, 내게 닥친 이 불행에 대해 누군가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유명한 데미안 소설에도 나오지 않던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은 절대 우리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What isn't part of ourselves doesn't disturb us). 상대는 그냥 나를 투영하는 거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뀌지 않을 그들을 향해 오발탄을 쏘는 것 보다, 그냥 그런 내 감정을 발견하고 나를 지지해 주기로 했다. 나를 바라보며, 아 내가 많이 힘들었구나, 엄마의 짜증과 비난에 많이 좌절했고 힘들었구나하고 내 감정을 발견하고 토닥여 주는 거 말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특히, 나의 나쁜 습- 짜증과 비난, 냉소는 제발 접어두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봐주고 응원해 주자. 지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처럼 말이다.
남편을 어떻게 해서 바꿔보겠다는 내 생각, 어떤 이상적이고 듬직한 남편이 내 옆에 있어야만 내 삶이 완성될 것이라는 나의 욕망, 집착을 모두 훌훌 버리기 했다. 나는 그냥 나로 존재하며, 나로서 내 인생이 완성되어질 뿐이다. 어떤 관념, 관점도 가지지 않고 텅 빈 마음으로 지금 여기를 살아갈 따름이다.
텅 빈 생각
어떻게 하면 모든 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세상과 모든 사물에 대해 아무런 관점도 갖지 않으면 된다.
머릿속을 텅 비워 존재의 본래 모습을 받아들이라.
- 금강경 마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