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없다면 깨달음도 없다.
주말은 일하는 이들에게 꿀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6시에 일어나 고함을 지르며 나를 깨운다. 무거운 눈꺼풀로 아침을 준비하던 중, 어젯밤 회사에서 한 실수가 떠올랐다. “바보야, 왜 그런 실수를 했어?” 자책이 밀려왔다. 남편은 통증 때문에 신경질이 잦고, 아이가 TV를 보는 것도 싫어하면서 정작 놀아주지 않는다. 주말의 집안일과 아이 뒤치다꺼리까지 내 몫이다. 분노와 억울함이 쌓였다.
이 모든 감정은 내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업무 실수는 내가 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남편의 신경질은 그의 통증 때문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지점에 머물러 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치유는 더디다. 부정적 생각—실수에 대한 자책, 가족의 무관심에 대한 억울함—은 나를 붙잡는다. 그래도 나는 깨달았다.
내 고통은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서 온다.
화를 안고 뒷산 절로 갔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숲 냄새와 바람을 느꼈다. 이어폰 없이 자연에 나를 내맡겼다. 긴장이 풀렸지만, 마음의 어지러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도 실수와 가족 갈등 속에서 자존감이 흔들린다. 하지만 법정스님은 말했다.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남편의 통증, 아이의 고함, 내 실수는 날씨처럼 온다. “오늘은 비가 오는군요, 햇빛이 비치네요.” 이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주말 동안 나는 해야 할 일을 했다. 아들과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재래시장에서 꽃게를 사 매운탕을 끓였다. 뒷산에 올라 숲내음을 맡고, 절에서 기도했다. 실수가 드러나면 “잘못했어요”라 말하고, 남편이 신경질 내면 손을 잡아주고, 아이와 놀 힘이 없으면 머털도사를 틀어줬다. 부산 불꽃축제를 못 갔지만, 우리 집 마당에서 낙엽과 바람을 만끽했다. 그거면 충분하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말했다. “당신은 우주가 그 신성한 목적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내 고통은 환상이고, 그 환상을 내려놓을 때 깨달음이 온다. 치유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나는 매일 작은 순간들—흙의 촉감, 아이의 웃음—속에서 나를 찾아간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님, 오늘도 한 걸음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