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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Dec 01. 2023

흉터이지만 상처가 되진 않았다.

왜냐하면 극복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 있다. 나는 이 작은 조직에서 이런 아이히만들을 매일 같이 목도하게 되어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아이히만은 나치시절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나치이다. 그는 수많은 유태인들을 죽였음에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채 법정에서 드라이하게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증언하였으며 그 내용이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가 집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소개되었다. 그녀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한나 아렌트는 개인적으로 볼 때는 너무 선량하며 꽤 괜찮은 시민 혹은 아빠, 남편이었을지 모르는 아이히만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극악무도하며 반인격적 살인행위들을 무자비하게 저지를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런 나치들이 특별히 사이코 패스여서가 아니라(일부 그럴 수도 있지만), 인간은 특정한 환경에서 그런 미친 짓들을 행할 수 있으며, 그러하기에 악의 평범성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 특정한 환경이란, 바로 사고가 결여된 시스템이다. 관료주의적이고 경직적인 조직 내에서는 주의를 기울여 생각하지 않는 한, 누구나 이런 살인마가 될 수 있다. 난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며,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수행했을 뿐이다라고 말한 아이히만 혹은 이후에 군사독재시절의 군인들의 모습, 아니면 아프가니스탄의 포로학대 케이스에서 봤듯이 말이다. 하지만 비단 이런 일들이 이런 뉴스에서만 등장할까? 아니다 이런 일들은 내 주변에도 일어날 수 있음을 나는 이번 직장을 다니며 깨달았다.


사고를 하지 않는 조직에서는 누구나 컨베이어벨트 위의 살인마처럼 기계적으로 타인에 대해 완전히 인간성이 결여된 행동을 할 수 있다. 나치 시절도 지나갔고, 일제 강점기, 군사 독재시절등 그 많은 살벌한 시절들이 모두 지나갔지만, 직장이나 학교등 여러 조직에서 이런 악의 평범성은 항상 재현될 수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신이 지닌 힘과 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분업화, 세계화, 외주화가 많이 일어나고 점점 개인들은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는 일개 시민일 뿐이며, 내가 하는 일은 어떤 누군가의 대의 혹은 xx주의, 시스템 아니면 진짜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개인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가 매일 행하는 말과 생각,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며, 내가 행하는 이 모든 것들이 타인과 다른 생명체에 엄청난 고통 혹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죽고 나면 결국엔 남는 것은 우리의 카르마뿐이다.


무튼, 그 많은 사람들이 왕따를 당하고 고통을 받아 힘들게 퇴사하는 모습을 보고도 이 조직의 사람들은 어째서 한 번도 그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들에 대해 미안함을 가지지 않았을까? 학교폭력으로 자살하는 아이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죽었던 어느 유투버 반대로 가해자였던 살인마들은 그냥 너무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이 기막힌 상황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게 일어났던 그 모든 불편한 상황들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것이 흉터를 남겼다라고 하더라도 결코 상처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 상황에서도 생각이라는 것을 했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렸고 그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졌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난 꽤 어른다운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외국에 있는 나의 보스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진실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매일같이 웃으며 안부를 물었고 나름 친근하게 대했던 동료들이 뒤에서는 내 치부를 드러내서 그룹에 보고하고 사진을 찍어 보고하는 등 유치한 행동을 해서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온다라고 말했다. 인간성에 대한 신뢰가 다 무너져버렸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되기에 나는 그냥 담담히 흘려보내고, 그걸 딛고 일어나기로 한다.


흉터

흉터가 돼라. 어떤 것을 살아 낸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네이이라 와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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