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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나라서 나여서 좋았던 23년 잘 가라

by 따뜻한 불꽃 소예

연말이다.

내가 브런치에 벌써 200개의 글을 올렸다. 취소한 글도 있고 지운 글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글을 써왔다는 그 사실만으로 나는 감격한다. 일단 시작했고 많이 적었다. 질은 조금씩 개선하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이 브런치는 누군가를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세상의 풍파에 치여 끔찍한 선택을 하느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만한 대나무숲을 찾아, 생존을 위해 시작했다.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내 치부, 내 걱정, 불안을 정리하고 다시 일어나기 위해, 나를 키워내기 위해 시작한 공간이었다. 아무개라는 익명성 아래에서 말이다. 그런데 지난 2년을 돌이켜보니 꽤나 효과가 있었던 거 같다.


첫째, 나는 내 감정에 대해 좀 더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 걱정, 욕망, 불안은 무엇인가에 대해 글을 쓰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나를 이만큼 알 수 있었을까? 나는 이상하기도 하고, 괴팍할 때도, 외톨이이고 외골수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강인하며 가족을 사랑하고 그리고 매일매일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 점을 발견했다는 게 참 좋다. 그리고 좀 이상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두 번째, 남을 좀 더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회사에서든, 가정에서든 내가 접하는 모든 타인들에 대해 유불리의 관점이 아닌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분석하고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때론 나를 향해 감행되는 신랄한 비난, 어이없는 공작과 무례함을 견뎌낼 수 있었고, 절대적으로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도 꿋꿋이 나로서 그리고 적어도 지켜야 할 선은 지키며 지난 2년을 버텨온 거 같다.


세 번째, 상황에 대해 객관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내 감정 그리고 상황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다 보니 누구와 이야기해도 논리 정연하게 내 의견을 표현할 수 있었다. 더불어, 누군가의 가스라이팅이나 그들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아~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이런 후회가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브런치에서 모든 감정과 상황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생각을 정리해 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더 대범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돌발 상황들에 대해 대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네 번째, 남에 대해 좀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감정을, 타인의 감정을 지켜보며 왜 이들은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그렇다고 내가 굉장히 포용적으로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멈춰서 지금 내가 품는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의 24년, 25년, 26년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정말 알 수 없다. 단지 나는 지금처럼 글을 쓰고 내 말과 감정을 관찰하고 정리할 것이며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남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길 그리고 내 글이 타인의 마음에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좀 더 발전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브런치*에서 읽은 그 할머니 화가처럼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내 나름의 최고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05화 인생이 쉽게 망하지 않는 이유 (brunch.co.kr)에서 나온 화가 - 그랜마 모지스에서 인용


감사합니다.

정말 수고 많았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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