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때론 외부에서 들어온 불편한 감정을 내가 여과기가 되어 거르고 내 안에 담아 둘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때론 상대를 특히나 소중한 사람이라면 그를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새해 남편의 가족이 일으킨 파동은 이번 주말까지 이어졌다. 남편의 큰누나는 대뜸 주말 점심때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올케는 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냐? 라며,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며칠 전, 시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남편이 큰누나와 시어머니와 통화한 뒤 많이 침울해한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그걸 자기 딸에게 전달한 거다. ...나는 그의 가족들이 그가 말기암환자임을 알고 배려해 주길 바랐던 마음에서 그 말을 했다. 나는 그의 가족을 참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환자라는 사실을 안다면, 시어머니는 새해부터 아들에게 내 통장에 얼마 밖에 없다는 말을 감히 해선 안 됐다. 그러시는 분이 샷시를 교체했다. 그리고 그의 누나 역시 자기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를 아픈 동생에게 전달할 것이 아니라, '동생아 내가 엄마를 돌보고 있다.'라고 위로와 안심을 줘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입장이다. 우린 각자 입장 차이라는 게 있겠지...
나에게 있어 내 부모란 오롯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이다. 내가 딸이라서, 부모 돌봄에 있어 보조적 입장에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는 나의 오빠에게 부모님께 잘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님들은 그런 세대가 아니라고 한다. 기껏 10년 정도의 나이차 밖에 나지 않지만 우리 간에는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인식의 차이가 있고, 자기에게 부모부양은 아들이 오롯이 맡아야 하고, 지금 그렇지 않은 상황이기에 불편한 거다. 우리에겐 그런 큰 인식차이가 있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다 법구경 말씀이 스쳤다.
진실을 말하라 성내지 말라 가진 것이 적더라도 누가 와서 원하거든 선뜻 내어주라. 이 세 가지 덕으로 그대는 신들 곁으로 간다.
정말 맞는 말씀이지만, 그 내어줌이라... 내가 이 말씀을 실천하기까지 정말 많은 수행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어제는 우리 집 뒷산 절에 올라갔다. 그리고 100% 그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지만, 부처님께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참회기도를 올렸다. 무엇을 잘못했는가? 나는 그의 가족에게 내 입장 혹은 불만을 전하지 말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내 불편한 감정을 삼키고 여과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족이기에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내 판단을 접어두어야 했다. 그들과 나는 완벽한 타인일 뿐이고 각자의 이해 관계속에서 행동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나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 시댁 식구, 그들은 나에게 그냥 완벽한 타인이다. 가족이 아닌 타인이라고 생각할 때 어쩌면 내가 이 상황을 더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아니다. 다시 한번 남편에게 측은지심이 생겼다. 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도 그의 어깨엔 여전히 짊어져야 할 짐이 가득했다. 아내인 내가 덜어주고 싶어 그의 가족 일에 개입했지만, 남는 것은 더 큰 상처이다. 그가 부디 극복하길 바란다.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남자는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돌봐줄 수 없음을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남자가 된다고, 그러니 자기는 그런 과정을 겪는 중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여정이 어떻게 끝이 날 것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그의 생의 끝에, 그가 단 한 번도 자기에게 주어진 그 짐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는 스스로에게 뿌듯함이 생길 것이다. 남편은 시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부터 섬망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동안 그 모든 케어를 그 스스로 짊어졌다. 물론 아버님께서는 돌아가셨지만 말이다.
감히 단단해지리라 그리고 성숙해지리라 말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니체의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단단히 하기로 했다. 언젠가 우리 생의 끝에 남들은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나 스스로는 안다. 적어도 나는 단 한 번도 비겁하게 내 삶의 무게를 남에게 전가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짐을 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리라. 괜히 이 책을 읽다 보니, 나까지 비장해지고 무거워진다.
무튼, 결론은 단단해지리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by 프리드리히 니체
"왜 그렇게 단단한가?라고 언젠가 숯이 다이아몬드에게 말했다. "우리는 가까운 친척이 아니던가?"
왜 그렇게 연약한가? 아 형제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나의 형제가 아니란 말인가?
왜 그렇게 연약하고 굴욕적이고 유순한가? 그대들의 마음속에는 왜 그렇게 많은 부정과 거부가 들어 있는가? 그대들의 눈길에는 왜 그렇게 시시한 운명밖에 들어 있지 않은가? 그대들이 가차 없는 운명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대들은 나와 함께 창조할 수 있을 텐가?
다시 말해 창조하는 자들은 단단하다. 그러므로 마치 밀랍에 찍듯이 그대들의 손을 수천 년 위에 찍는 것을 그대들은 더없는 행복으로 생각해야 한다.
마치 청동에 써넣듯이, 청동보다 더 단단하고 청동보다 더 고귀하게 수천 년의 의지 위에 써넣는 것을 더없는 행복으로 생각해야 한다. 가장 고귀한 자만이 완전하게 단단하다.
그러므로 아,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머리 위에 이 새로운 서판을 내건다. "단단해지라!"
아. 그대 나의 의지여! 그대 모든 역경의 전회여! 그대 나의 필연이여! 모든 사소한 승리로부터 나를 지켜달라!
내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그대 내 영혼의 섭리여! 그대 내 속에 있는 자여! 커다란 운명을 위해 나를 지키고 아껴 달라!.
내가 언젠가 위대한 정오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성숙해 있기 위해서, 달아오른 청동처럼, 번개를 품은 구름처럼, 부풀어 오르는 젖가슴처럼 준비를 갖추고 성숙해 있기 위해서
아 의지여, 모든 역경의 전회여, 그대 나의 필연이여! 하나의 커다란 승리를 위해 나를 아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