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생각엔, 그 판단엔 유효기간이 있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운명의 장난 같은 날들이 찾아온다.
어릴 적엔 책 속 문장처럼 느껴졌던 말이
이제는 내 삶 속에서 몸으로 겪어지는 진실이 되었다.
오늘 아침, 마당에 나서자
촉촉하게 젖은 대지 위로
산뜻하고 따뜻한 공기가 나를 감쌌다.
어젯밤 내린 봄비 덕분일 것이다.
우리 집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내 무릎에 얼굴을 비비고,
나는 그 작은 생명에게서
너무도 깊고 선명한 사랑의 기운을 느꼈다.
순간,
이 아침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남편의 병,
아이의 학교 적응,
회사 일,
시댁과의 갈등...
하나씩 찾아올 줄 알았던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 무게에
심장이 쥐어짜이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았었다.
잠도 잘 수 없을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나날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게 인생이구나.
고통은 한 가지씩 찾아오지 않고,
때로는 몰아치는 태풍처럼 오기도 하는구나.
그걸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미움, 섭섭함, 억울함..
그 많은 감정들도
지금 이 순간엔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도 그 순간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그 순간,
그들의 입장이었겠지.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회사 동료도...
사실,
내가 그들에게 미운 감정을 가진 건
내가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대, 바람, 그리고
"내가 이 정도 했으면 고마워해야지"하는
에고(ego)때문이었다.
이제는 조금씩 알아간다.
내 존중과 사랑은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이미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그 이상을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게 없다.
모든 것은 상황적이다.
내가 싫어했던 사람도
다른 곳에서는 누군가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내가 지옥이라 여긴 순간도
언젠가는 그리워할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인생은 옳은 것입니다." - 릴케
그래서,
지금 내가 품는 생각에도 유효기간을 두기로 했다.
그 생각 하나에 머물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이 삶이 주는 것에 몸을 맡겨보려 한다.
자꾸만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연습.
그 연습이
나를 더 평온하게 해줄 것이다.
오늘은
봄비 내리는 목요일.
점심시간에는
우산을 쓰고라도 꼭 산책을 나가야지.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감사하게, 소중하게 살아야겠다.
사랑하는 내 인생아,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