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은 받되, 경멸과 미움은 받지 말아야 한다.
인스타그램을 흘깃하다 보니 40대에 해야 하는 일, 해선 안 되는 일이라는 슬라이드에서 내 눈길을 끈 한 문장을 발견했다. '비난은 받되, 경멸과 미움을 받지 말아야 한다.' 이 문장은 군주론에 나온 내용을 각색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책에서 군주란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그가 하는 행동이 경박하고 도덕적이지 않아 경멸과 미움을 받아선 안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건 정말,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권력자들의 행동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본 카리스마 넘치는 대표님들은 그들 특유의 권위주의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그 특유의 무엇인가가 있었다.
파콰드가 떠나는 뒷모습은 추했다. 그는 자신과 도원결의한 남아있는 직원들에 대한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최대한 자기가 챙길 수 있는 가장 많은 위로금을 받기 위해 내부 직원들을 선동했다. 우매한 그 직원들은 파콰드의 바람잡이 노릇을 하느라 그룹에서 나온 감사팀 및 경영진들의 비난과 눈총을 받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어쨌든 파콰드는 영원히 이 회사에서 사라졌다. 그는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떠났지만, 남겨진 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무모한 짓이 결국 한 사람의 개인적 욕심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지만, 가장 진한 사랑이 가장 진한 증오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파콰드는 자신을 따르던 직원들에게 그런 잔상을 남길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얻은 지혜란, 돈보다 중요한 것은 내 명예, 떠나는 내 뒷모습이다. 나는 비난을 받더라도 경멸과 미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아직까지는, 그리고 앞으로도 정말 그러고 싶다.
반면, 다른 이유로 회사를 떠나게 된 본사 임원의 뒷모습은 깔끔했다. 그 임원은 잘못이 없었다. 하지만 조직개편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그를 밀어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켰고, 남은 일들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작별인사는 따로 남기지 않았지만, 회사에 악의를 품고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파콰드의 기행에 대한 보고서만 길게 남기고 떠났다는 이야기만 들릴 뿐이다.
나와 주기적으로 회의를 하는 본사 동료는 파콰드에 물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것이 문화적인 것이냐'고. 나는 답했다. '이건 문화적인 게 아니다. 단지, 우리 모두의 이고(Ego)가 극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가장 추악한 모습일 뿐이다.' 우리 누구나 그렇게 추하게 끝을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품위 있는 퇴장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과 친구보다 돈이 중요한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키고 싶다. 내 마지막 자존심은 내 품위를 지켜내는 것이다. 물론 품위가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마지막 날, 내가 스스로에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자존감 일 것이다.
"서사시의 영웅들은 결과가 아니라 행동으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가 아무리 정교하게 선택하고, 운을 잘 지배할 수 있다고 자만해도 결국 최후는 운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해결책은 품위뿐이다. 품위란 환경에 직접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계획된 행동을 실행한다는 뜻이다. 그 행동은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만, 분명히 최상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행동이다. 억압 속에서 품위를 유지하라.
- 나심 탈레브 '행운에 속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