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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불꽃 소예 Jan 26. 2024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파콰드의 황당한 기행들이 연속된 어느 날 나는 이 구절을 발견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루가 23:34).'


가끔 그런 일들을 목도하게 된다. 제삼자의 눈으로 봤을 땐, '어어 저러다 골로 가겠는데' 하는 자살골을 계속 넣고 있는 자승자박의 시츄들.. 예를 들면 회사에서 몰래 녹음을 해 증거자료로 사용한다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책 잡기 위해서 몰래 사진을 찍어 투서를 넣고, 또는 더 과감하게 똘마니를 시켜 문제의 직원이 곤란하게 될지도 모르는 설정 사진을 찍게 해 그걸 임원들에게 뿌리며 "얘 봐라' 하는 이런 유치한 짓들 말이다. 그런 황당한 일들은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겐 깜짝 놀랄 일이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겐 '얘 봐라' 이런 반응이 나온다. 이런 사이코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대응해선 절대 안 된다. 사이코에겐 반응해선 안된다. (Act - React)로 했다간 그들의 수작에 걸려든다. 이 때는 차분히 행동해야 한다. 대응보다는 관망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놈이 실수할 때까지 말이다.


무튼 그가 그토록 미친 기행을 폭주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런 비참한, 존심 상하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왜 그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건 그가 지나친 자아위협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디서 읽은 책에 따르면 자아위협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옳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하고 남이 자신을 우습게 볼 거라는 위협감에 시달려 더 과민반응하고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전혀 구하지 않고 어떤 관용과 이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돌이켜 봤을 때, 그가 그런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가 제일 신뢰했던 똘마니의 실수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건을 은폐하고 넘어가려고 했고 그게 걸려들었다.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 난공불락의 성도 결국에는 외부의 침략보다 내부의 분열로 무너지는 것이 역사가 아니던가..


이 대서사시의 결말은 영국 보리스 총리 재임 시절, 내각의 계속된 실정이 이어지던 때, 한 장관이 사직서에 쓴 말로 귀결 될 수 있을 듯하다. The tone you set as a leader, the values you represent, reflect on your colleagues, your party and ultimately the country. (당신이 지도자로서 말하는 톤과 대표하는 가치는 당신의 동료, 당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라에 영향을 주게 되어있습니다.) 파콰드는 자기가 대표하는 가치로 주변에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비슷한 결론과 전략으로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집단 괴힘으로 내보내고 자기들만의 난공불락 성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이 폭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자각하지 못했다. 만약 그들 중 누구 하나 다른 가치 아니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가 그토록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을까?


가톨릭에서 새 추기경을 뽑을 때 사제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거기에 Devil's advocate(악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사제가 계시다고 한다. 이 사제의 역할은 추대된 새 추기경 후보에 대한 비판을 거세게 함으로써 편향적인 의견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만약 파콰드에게 Devil's advocate와 같은 역할을 하는 똘마니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그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편향(Bias)적인 시각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같은 상황에서 더 발전적으로 더 다르게 행동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반추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자신의 편향적 시각을 조정해 줄 '쓴소리' 하는 누군가를 옆에 두어 그 행동을 '절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많은 성현들이 말씀하신 듯하다.


나 역시, 이런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회사 내 집단 괴롭힘의 피해자가 되어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자면, 일단 면접을 봤을 때 리더가 이상하면 그냥 나와야 한다. 그리고 사이코와 직접적인 충돌을 하기보다는 조용히 비위를 맞추는 것도 하나의 지혜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도 해본다.


무튼, 이것으로 나의 파콰드 탐구는 끝을 내기로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나 스스로가 아상이 높은 파콰드가 되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항상 나를 돌아보고, 남들이 '어어 아버지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실수와 실패를 인정하며, 남들이 내게 가하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해서,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내게 다가오는 모든 상황을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로 다짐해 본다. 그러다 보면, 자아 위협감은 낮아지고, 자존감은 높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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