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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 나

하지만 그런 나도 무조건 옳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시어머니의 생신이었다. 주말 오후 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셨고, 남편은 어머니와 저녁을 먹고 다음날 나보고 모셔다 드리고 용돈까지 나보고 드리라고 했다. 맨 처음에는 그냥 그런갑다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오시기 전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는 우리 아빠 생신 때 코빼기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는 왜 자기 엄마 생신상에 용돈까지 내가 생각한 금액보다 더 드려야 해' 머야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 이 나쁜 놈아. 나는 일도 하고, 아이 안경 맞추는 일부터 모든 일을 다 혼자서 꾸역하고 있는데 너희 엄마 생신까지 내가 다 일일이 챙겨야 해, 그냥 밥 먹고 헤어지면 되지! 이 나쁜 내 남편의 특징은 효도를 스스로 하지 않고 항상 배우자에게 시킨다는 점이다. 그 습성은 아프나 안 아프나 똑같다. 저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말이다. 이 나쁜 놈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잠재우기 위해 나는 산책을 했다. 비가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산책길에 흘러가는 시냇물의 양이 많다. 시원하게 흘러가는 그 물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의 찌꺼기도 흘려보내려 했다. 자기 좋으라고 미꾸라지 방생까지 하고 있는 나에게, '언제까지 저 꼴 봐야'하냐며 말했던 신랑의 말을 꼽씹으며 내가 도대체 전생에 무슨 악업을 지었기에 저런 인간을 만났나 하며 그냥 하염없이 걸었다.


근데 이 감정을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화낸 얼굴로 손님을 맞을 순 없지 않은가? 그냥 떠나보낸다. 이 더러운 기분을, 이 손해 보는 듯한 기분을 차례차례 흘려보낸다.


사람마다 보는 렌즈가 다르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이 일은 정말 남편의 뒤통수를 세게 휘갈겨주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일이지만, 남편의 렌즈에서는 그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 좁은 렌즈 때문에 내가 고생하고 있고, 이렇게 일대일로 비교하며 억울해지는 내 마음, 옹졸해 보이는 내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그냥 흘려보내기로 했다.


수행자는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그 상대의 입장이 도무지 지금은 안 보이지만, 지금 내가 가진 렌즈로는 절대 안 보이지만 나는 언젠가는 이해되겠지 하고 흘려보내고 그냥 집으로 와서 내가 사고 싶었던 옷을 샀다. 3개월 할부 내 돈으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시츄들, 언젠가는 크게 바라볼 수 있는 수용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될 수 있겠지. 이번생은 틀렸다. 기분 나빠하는 내 마음을 무조건 받아주고 있다. 그래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맞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나는 내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될 거다. 제일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이 봄을 즐기며 그냥 웃기로 했다. 억울한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 아들내미가 맞춘 안경처럼 렌즈를 바꾸면 볼 수 있게 되는 그런 날이 오겠지.


그러니 넉넉하게 흘려보내고, 나는 할부로 산 새 옷을 입고 나에게 가장 다정한 나가 되어 홀로 전시회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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