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론 세상만사 모든 일이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순교자도 아니면서 모든 것을 짊어지는 듯이 스스로 착각하며 살아가다 보니, 그 무게에 짓눌려 가라앉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몇 달 전까지, 엄청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꿈이나, 몰고 있던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런 꿈들을 꿨다. 아마도 스스로가 어깨에 올려둔 삶의 무게 때문인 듯하다.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나온 내 몸을 우리 집 꼬마가 보고, 엄마 왜 여기에 멍이 들었어? 이렇게 물었다. 나는 아침부터 말을 듣지 않았던 이 녀석에 화가 난 탓에, '네가 엄마 애먹여서 그렇잖아'라고 대답했다. 신 강한 우리 아이는 바로 '이건 엄마가 엄마 몸 관리 잘 못해서 그런 거야, 나랑 상관없어' 이러는 거 아닌가,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건 맞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세상만사 모든 일을 내 책임인 양 받아들이곤 했다. 남편이 아픈 것도, 아이가 학교에서 혼났다거나 친구와 싸워서 선생님에게 전화가 올 때나, 심지어 회사에서 결산 보고를 할 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거까지 내 책임 인가 하는 과대망상적 생각까지 했었다. It's not my fault. 내 책임이 아니다.
내 체중도, 삶을 대하는 내 태도도 좀 가벼워지면 좋겠다.
버티자, 참자 뭐 이런 거창하고 무거운 워딩보다는 에잇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요렇게 해버리고 싶다.
아니타 무르자니의 책에서는 그런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대신,
내가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고, 스스로가 무조건적으로 사랑받고 있고 받아들여진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두려움과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너무 심각하게 그리고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 상황들에 대해 어떤 순교자적 태도로 다 짊어가겠다고 하다가는 천리 아니 세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중심이 되어, 그냥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자주 자기 자신을 쓰담해 주고,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것들, 나를 뿌듯하게 해주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 생각해 보고 그런 활동을 계속해 나가며 사는 거다. 그냥 하루하루 기분 좋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거 그뿐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대단한 임무를 부여하진 않았다. 그 가상세계에서 나와 좀 더 라이트 한 세계에서 살아야겠다. 가벼워진 체중과 가벼워진 태도로 말이다. 여름이 오고 있다.
아니타 무르자니,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라는 책에서
핵심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늘 나 자신의 진실 안에 머무는 데에 있다.
내 목표는 자신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상태에서 결과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내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된 것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기 시작했을 때 외부 세계 또한 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을 나는 보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최선의 것들을 끌어당기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우주를 위해 최선의 일을 하고 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떤 것이든 믿음이나 생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때 나는 우주 에너지가 나를 통해 흘러갈 수 있도록 내 자신이 더욱 넓어지고 마치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이런 허용의 상태에 있을 때 훨씬 더 긍정적인 우연의 일치들이 내 삶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언제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결과를 끌어당기며 비슷한 것들을 불러들인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에게 친절하면 할수록 외부의 일들도 그런 내 태도를 반영해 내게 친절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하거나 판단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마찬가지로 그에 상응하는 상황들이 펼쳐질 것이다. 우주는 언제나 내 생각이 맞다며 내 편에 서준다.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맞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