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이다.
초여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한낮에는 덥지만, 아침저녁이면 선선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한겨울에 태어난 나는 이 계절을 가장 사랑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큰 저항 없이 아침 일찍 눈이 번쩍 떠진다. 그러면 나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아침마다 우리 동네 산에 있는 절에 가려고 한다. 매일 바위산을 오르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데, 이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특히 어제는 소낙비가 한차례 내려 오늘의 산은 충분한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일출과 함께 태양이 햇살과 온기를 내뿜기 시작하면 땅에서는 진한 머스크향, 흙내음 그리고 각종 나무들이 자기만의 최고의 체취를 뿜어 내기 시작한다. 그 어떤 조향사도 지금 이 숲이 내뿜어 내는 이 향기를 결코 재현해 내지 못할 거란 생각마저 든다. 이 순간 나는 촉촉하고 깊은 그리고 너무 맑고 상쾌한 숲냄새에 취하게 된다. 정말이지 소위 산타는 아저씨들이 말하는 '산뽕'에 취하게 되는 거다. 강력한 생명의 기운을 내 몸속으로 들여오는 기분이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 살아있음에, 내가 여기, 지금 이 순간 존재함에 무한한 감사함이 생긴다.
요즘 읽고 있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17살 어린 여주인공이 홀로 출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어린 소녀는 홀로 만삭의 몸을 부여잡고 저 깊은 숲 속, 상냥함이 넘쳐흐르는 우물이 있을 것만 같은 다정한 눈길을 가진 윌과 사랑을 나누었던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그 모든 과정, 장소, 그리고 출산을 했을 때 느낀 그 감정에 대한 묘사를 읽고 있노라면, '이 아이는 어떻게 해서 이토록 강인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40도 넘은 나이에 지금 내 운명이 주는 이딴 고통에 시름하고 있는데, 이 소녀와 비교해 보면 너무도 좋은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 살고 있는데, 나는 계속해서 내 운명에 대해 저주하고, 오만 불평과 불만을 내뿜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이 어린 소녀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 몸 안에 잉태한 작은 생명을 지켜내겠다는 그리고 반드시 살아내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이고 그 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정말이지 놀라운 인간의 모습이다.
문명의 한가운데 살고 있으면 자꾸만 각자 자기가 쳐한 작고 사소한 불편함에 매몰되어 버리게 된다.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자연과, 주변인들의 작고 큰 배려와 사랑 그리고 너무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편리하고 편한 문명의 혜택들 (교육, 치안, 도로 등등)을 잊어버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사소한 불편함과 남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이 더 크게 부각된다. 아~다들 캠핑 가는데, 나는 남편이 아파서 못 가는구나, 아이에게 좀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놈의 집은 왜 이리 안 팔리나, 아 내가 일하는 회사 사람들은 다 왜 이리 미친 짓들을 하는 것이가 등등
삶은 누구에게나 불공평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동시에 삶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대단한 것이다.
지금 가진 것에 무한한 감사함과 경외심을 느끼며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작고 사소한 불편함에 집착해 살아갈 것인지는 결국에는 내 선택에 달려있다.
오늘 나는 산을 오르며 그걸 깨닫게 되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가 너무 사랑하는 이 계절에, 이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절에 가고 있다. 그리고 숲은 내게 가장 최고의 향기와 색깔, 소리 그리고 강력한 생명의 기운으로 나를 감싸고 위로해 주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더 바래야 하는 것일까?
나는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며 나무 그루터기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주변의 숲을, 차가운 적막과 어스름 속에 매달린 삶과 죽음의 층을 쭉 둘러보았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숲 속의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다. 숲 바닥에는 큼직한 바위, 잔가지와 솔방울들 사이로 큼직한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거대한 황갈색 나무들도 있었다. 그 아래로 수십 그루의 묘목이 생명을 좇아 자라나고 있었다. 그중에는 잡초와 쌓인 눈 위로 힘차게 머리를 삐쭉 내민 것들도, 아직 내 배속에 있는 아기처럼 썩어가는 통나무들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것들도 있었다. 혼란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곳의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나도 작고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같지는 않았다. 중략 이 낯선 숲 속에서 나는 정말로 혼자가 아니었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까지, 탄생하고 견디고 시드는 만물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숲 속의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Each day, I was building a life of my choosing, and it was a good life. I knew what was missing, but I was also appreciative of what was there!
From 흐르는 강물처럼 (셀리 리드 지음, 김보람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