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 가족의 무게
남편의 병세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하루하루 조금씩, 아니 계단식으로 훅훅 나빠진다는 교수님의 말이 최근 들어 더욱 실감 난다. 통증에 지친 남편은 아이에게 화를 내고, 나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프게 되뇐다. 아, 이 사람도 얼마나 힘들까.
이제는 부모님도 아프시다. 아버지께 하인두암이 찾아왔다. 큰 수술보다는, 남은 시간을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싶다는 아버지의 선택을 우리는 존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감사와 안쓰러움이 함께 밀려왔다.
나는 알고 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죽음은 삶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알고 있음과 받아들임은 별개의 문제다. 가끔은 문득, 등골이 서늘해진다. 한순간 모든 것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그 냉혹한 사실 앞에서.
오빠는 충격을 받았고, 나는 애써 괜찮은 척했다. 마치 오래된 습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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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말한다. "이 시간마저 소중하다"라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믿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모든 불확실성이 끝나고, 내 마음이 평온해지기를 은연중에 바란다.
부질없는 바람임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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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새벽녘에 잠이 깼다. '모든 고통이 내 몸을 통과하고, 나는 저항하지 않는다.'
그 이미지를 떠올리며 심상화(心想化) 연습을 해보았다. 책에서는 고통을 받아들이면 사라진다고 했지만,
아직은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그저 파도처럼 일렁이는 감정 위를 부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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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남편과 통화했다. 잠시 생각했다.
"그래, 이 시간마저 그냥 있는 그래도 살아내자."
남편이 아프더라도 우리가 같은 집에 있다는 사실. 짧게라도 일상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보기로 했다. 게다가, 나는 그에게 가장 큰 선물을 줄 수 있다.
"함께 있어주는 것" 인간이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
남편은 한때, 자신의 병세가 악화되면 시댁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었다.
하지만, 결국 말했다. "그래도 아들과 아내 옆에 있고 싶어." 짜증을 내고, 힘들어해도 결국 우리를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마음을 받아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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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퇴원한 아버지와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할 계획이다.
물론, 봄볕처럼 포근하지만은 않을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이 봄이, 우리 가족에게 잔혹함만이 아니라, 사랑과 회복의 계절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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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걸 통해 나는 조금씩 배운다.
삶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해 내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작은 목소리로 다짐한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