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되려는 나는 짐승이 된다

가족의 냉정함과 나의 방어선

by 따뜻한 불꽃 소예

천사가 되려는 나는 짐승이 된다.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은 천사와 짐승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라고.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한계와 불완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나는 오늘도 천사가 되려 애쓰지만, 점점 짐승이 되어간다.

5월의 연휴는 나에게 쉼을 주지 못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나는 어린이날 일을 해야 했기에 아픈 남편 옆에 아이를 놔두고 출근을 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이는 하루 종일 TV를 봤고, 집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남편은 나에게 누군가 자기 옆에 있으면 좋겠다고, 끼니를 챙겨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때때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자신의 참지 못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어린아이가 가여워졌다.

친정에서 전화가 왔다. 부모님이 항암치료로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는 소식이었다. 엄마의 마음에도 깊은 돌덩이가 눌러앉았겠지. 그 생각에 측은함과 가여움이 밀려왔다.


시댁에는 따로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남편도 내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나도 감정이 그 정도의 여유까지는 없었다.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로는 시어머니는 시누이들과 맛집에 갔다고 했다. 순간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참 팔자 좋으시네'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왔다.


다행이라고 여긴 내 마음 한편에는 천사의 마음이 있었겠지만, '참 팔자 좋으시네'라고 느낀 내 마음속에는 짐승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은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공감해 주는 것이 아닐까? 나는 시어머니와 시누이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공감의 마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통받는 아들 앞에서 그렇게 말하진 않았을 텐데... 내가 그들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마음은 정당하다. 나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자기와 피를 나눈 사람의 고통을 목도하고 같이 버텨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무런 배려 없이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로 자기들의 길을 간다. 그런 행동과 말들이 자기 아들과 동생에게 얼마나 큰 절망으로 들릴지는 생각지도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무례함에 대한 섭섭한 감정과 원망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천사가 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차단하거나 거리두기로 정리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매정함과 차가운 냉정함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타인의 눈에는 차갑고 비정한 모습으로 보일지언정, 그들은 사실 그 고통을 감당할 그릇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타인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호의와 사랑을 받지 못한 채, 갑자기 부모가 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남편은 아직도 그의 원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놓지 못한다. 울고 싶을 때 울지 못하고, 감정을 억눌러야 했던 시간들. 막내이지만 항상 폭력적인 아버지 앞에서 '그녀들'을 보호해야 하는 역할을 하고, '울면 때린다'라는 폭력적 훈육 속에서 감정을 억누른 채 살아왔던 시간들.


나는 시댁에 대한 내 섭섭함과 원망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내게 착한 며느리 노릇을 강조하지만, 그건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나의 섭섭함은 정당하다. 나는 지금, 내 감정의 무게를 인정하고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충분히 내 안에서 회복되고 힘이 생겼을 때, 그 정도가 되면 그들도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머릿속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사가 되려는 나는 짐승이 된다.


그것이 지금의 나다.


"인간은 천사와 짐승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다.
우리는 천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짐승이 되어 버린다."
- 파스칼 [팡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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