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st Me, 그리고 Pivot
직장 생활은 늘 고역이다. 어딜 가나 정치질에 편 가르기가 난무한다. 하지만 이 작은 조직에 오래 머물며 느낀 건, 여기가 한국 사회의 프랙탈이라는 사실이다. 프랙탈이란 자연에서 자주 발견되는 패턴으로, 부분과 전체가 유사한 구조를 갖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 작은 회사 안에 사회 전체의 문제가 응축되어 있는 셈이다.
극단적인 분열과 편 가르기, "내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넌 적이다"라는 이분법. 지금의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 윤석열을 싫어하면 좌파, 이재명을 싫어하면 극우. 세상은 점점 더 갈라지고, 서로를 낙인찍기에 바쁘다.
몇 년 전까지 이 회사에는 파콰드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분열을 조장하는 선동가였다. 그가 떠난 뒤에도 편 가르기와 네 편 내 편 가르기는 여전하다. 나는 파콰드 후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역시, 파콰드 파벌의 핵심이었고, 집단 괴롭힘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임명된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반발하지 않았다. 그건 회사의 결정이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배웠다.
예전에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인상 깊게 본 장면이 있다. 백수저팀의 팀장 최현석 셰프와 팀원 에드워드 리. 에드워드 리는 팀장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여러 차례 의견을 냈지만, 팀장인 최현석 셰프가 Trust me (나를 믿어달라)며 결정을 굳히자, 결국엔 이렇게 말했다.
"팀 리더를 정했다면 그를 믿어야 한다. 때때로 팀 리더가 고집스러울 수 있지만, 그를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태도도 그와 같지 않을까. 협력.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일단은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를 줄 아는 자세.
돌이켜보면 나 역시 과거에 파콰드가 너무 싫어서 그의 의견을 거부했던 적이 있다. 아마 그로 인해 그가 더 나를 밀어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배운다. 직장인이라면 유연하게 움직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Pivot.
상황에 따라 내 포지션을 조정할 줄 아는 것. 좋아하지 않아도, 그 결정이 전체의 방향이라면 우선은 따르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진짜 협력이고, 어른스러운 태도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내가 지켜야 할 자세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 책임지는 태도다.
아무리 애써도 도저히 안 되겠다면, 그때는 내가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나는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