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더운 폭염이 지나가고 남긴 것
처서(處暑): 더위가 그친다던 시기는 이미 지났건만, 폭염은 여전히 무자비하다. 건강한 나조차도 지치는데, 아픈 남편은 더 고통스러워한다.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무겁게 흘러간다.
그래도 나는 이 끝없는 터널 속에서도 삶이 여전히 빛나기를 바란다.
남편이 힘겹게 '오늘 좀 나아지겠지.'라고 말하며 미소 짓던 순간, 그의 눈빛에서 스며드는 피로를 보며 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의 힘없는 목소리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곧장 절로 달려가 부처님께 기도를 했다. 절의 고요한 공기 속, 촛불이 일렁이는 대웅전에 서자 내 마음도 잠시나마 흔들림 없이 가라앉았다. "부디 작은 빛 하나라도 허락해 주세요. 그 빛으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게 해 주세요."
돌아보니, 이미 빛은 스며들고 있었다.
아이의 웃음소리, 석양의 따뜻한 색감, 엄마와 나눈 대화 속에서 그 빛은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이 무자비한 폭염이 지나가면 무엇이 내게 남을까?
아마도 화려하고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 작고 소박한 순간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결국 내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 가족이 더위속에서 삶을 이어나갔다는 사실이다.
아픈 아빠는 매번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일찍 집에 오는 아들을 위해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준비한다. 아이는 그 간식을 꺼내먹으며 세상 행복해하며 숙제를 한다. 간식이 없을때는 '아빠 뭐 맛있는거 없어요?' 이렇게 애교를 부린다. 너무 더운 여름, 일하고 살림해야 하는 엄마를 위해 아빠는 시원한 카페라테를 주문해 준다, 아내를 위해서 말이다. 우리 집 꼬맹이에게 피서는 없었지만, 그래도 잠시 나와 '좀비딸'같은 영화를 보고, 반반 팝콘을 서로 더 먹으려 경쟁하며 낄낄대던 순간들... 친정 아버지 병문안을 위해 찾은 송도. 그곳에서는 가슴 멎을듯한 불그스름한 석양을 봤다. 그리고, 푸른 등나무 아래에서 사랑하는 엄마와 노란색 애플망고 코코넛 신상 슬러시를 맛있게 먹으며 일상을 이야기했다. 이 모든 삶의 순간들이 내게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들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로 기억할 수 있을 거 같다.
폭염은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삶은 여전히 계속 빛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이 작은 추억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