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의 불연속성
아는 동생과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다 회사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이 다니고 있는 직장에 20년 차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이제 막 들어온 신입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면서 엄청 열을 냈다. 그 동생은 이제 그 회사를 그만둘 것이기에, 남겨질 동생이 걱정이 되어서 괜히 더 열을 내고 있었다. 그 20년 차 언니는 자신이 갑이라 생각하고 신입이한테 갑질을 하는 걸까? 요즘과 같은 시대에 '갑'이라는 것이 있기라도 한 것인가? 왜냐하면, 요즘 사람들은 아니다 판단되면 바로 나가버리고, 공석이 생기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결국 그 일을 나눠서 해야 한다. 게다가, 업계에 소문이 안 좋게라도 나면 사람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고 결국엔 그 일은 누가 오랫동안 하게 될까? 협상력이 떨어지는 작은 회사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평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19년도쯤에 기브앤테이크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책의 내용에 크게 동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회사생활을 하면서 워낙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사람들이 잘 나가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 사장을 봐서도 말이다. 당시 회사 사장님은 그 책에서 나온 전형적인 테이커였다. 항상 남과 경쟁해서 이겨야 하고 어떤 논쟁에서도 굽히지 않고 남의 것을 뺏고 나의 성과를 두드러지게 보이게 하는, 소위 산업화 시대의 아이콘. 당시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저 절대적인 테이커에게도 그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리막길이 있을까? 과연 그가 물러날 것인가? 그러다 내가 더 먼저 퇴사를 하긴 했지만 이후 들려온 소식으로는 그는 노조와 십여 년간 이어온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하고 형살이도 하고 그 회사에서도 물러났다고 한다. 물론 엄청난 현금 페이백이 있었고, 다른 회사에서도 대표이사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나, 최근의 소송에서도 패소했다고 하니 그가 생각한 영광이 영원하진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커를 내리막길로 내몬 것은 결국에는 테이커 스스로의 자만과 아집이었다. 테이커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힘이 또한 그를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그를 보며 깨달았다. (책 속에서 => 매몰비용의 오류: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경향이 있는 기버에 비해, 테이커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 실패했을 때 다른 사람이 자신을 우습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아 위협감 때문에 더 큰 위험을 감수하고 결국엔 실패한다고 한다.)
나를 돌이켜보자면, 나는 기버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손해 보기 싫어하는 메쳐(matcher)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기버들을 떠올려 봤다. 많은 기버들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는 앞서 말한 아는 동생. 그 친구는 나와 신랑이 위기에 빠져 사업체를 다 날렸을 때 우리 곁에 끝까지 남아 마무리를 다 봐주었다. 그 아이는 스스로 오지랖이 넓다라고 말하는 기버이다. 한때 나도 그녀가 참 오지랖이 넓다,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남일 다 도와주고 지 일을 하니 항상 야근이고, 늦게 일하는 어린 동생들을 집에 차로 데려다 주는데 굳이 왜 그러나? 그렇게 한들 고마워할까? 어떻게 보면 호구스러운 면이 많은 아이다. 하지만, 난 이 기버를 내 평생 은인으로 생각하고 매처답게 그 받은 마음을 갚아주어야지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 기버처럼 한번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어볼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태생적으로 깍쟁이스러운 면이 있어 잘되진 않지만 말이다. 착하다고 다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할 정도의 강단있는 기버라면 나같은 매처를 만나 그 복을 되돌려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