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날, 따뜻한 손 하나
내가 바랬던 건 온기였구나
남편은 드디어 자기 상태를 직면하기로 했다.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기에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다니던 서울에 있는 병원은 그 몸으론 갈 수 없기에 우린 지역에 있는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쉽지 않았다. 남편의 현재 상태를 받아주는 병원은 좀처럼 없었다. 아프면 찾아가야 할 곳이 병원이지만, 그날 내가 마주한 대한민국의 의료현실은 참담했다. 환자 셀렉이 심했고, 신규 암환자는 받지 않는다는 말만 반복해서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을 받아주는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전원을 하기 위해선 그전의 의료기록을 떼야했고 나는 주말에 서울에 올라갔다.
좋은 일로 서울에 올라갔다면 너무 신났을 것이지만, 그날은 유독 춥고 사람도 많고 진눈깨비까지 날려 무거운 내 발걸음이 더 무거워지는 날씨였다. 새벽에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서울대병원을 들려 서류를 받고 돌아오던 지하철에서 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승강장에서 다음 열차를 기다리며 잠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 자리 옆으로 할아버지께서 앉으셨다. 그 할아버지는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오자, 일어나시려고 했다. 하지만 무릎이 아프신지 연신 주저앉으셨다. 그때 마침 내가 옆에 있었고, 손을 잡아 드렸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의 손이 너무 따뜻했다. 순간, 아... 내가 바란 건 이런 것이었구나.
누군가 나를 잠시 잡아주는 것!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것!
어쩌면 힘든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건 이런 짧은 순간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아닐까? 그 온기를 나누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구원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을 완전히 책임져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주저앉아 있는 나를, 일어나려고 애쓰는 나를 잠시 잡아주는 것, 이걸 원했던 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했던 건 이 온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다 읽었다. 물론 소설 속 글자가 내 머릿속에 닿진 않았지만 나는 그 긴 시간, 내 정신을 잠시라도 다른 곳에 두고 싶었다.
잿빛 하늘 아래 눈인지 비인지 모를 차가운 진눈깨비가 내리던 그날, 서울역 옆의 쇼핑몰 커피숍에 앉아 책을 펼쳤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가족과 연인들의 붉게 상기된 얼굴도 보였고, 그 복잡한 커피숍에서 일행에게 자신의 여행 무용담을 큰 소리로 늘어놓는 어느 할아버지도 계셨고, 큰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며 쇼핑센터를 오가는 관광객들도 보였다. 행복해 보이는 바이브와 약간은 거리가 있었던 나는 괜스레 소설을 펼쳐놓고 눈물을 닦으며 책을 읽는 척했다.
나무보다도 오래 살지 못하는 덧없는 인간의 유한한 삶에서 나는 괜스레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애쓰며 서울을 오가고, 남편의 병원을 알아보려 동분서주하는 내 모습에서 약간의 현타도 느꼈고, 어쩌면 내가 헛수고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스쳤다. 진눈깨비처럼 사라질 우리들인데 뭐 하러 이리 애쓰며 사나 하는 허무주의가 떠 올랐다..
그럼에도, 어쩌면 인간 존재의 의미는 결국,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며 살았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지금의 긴 투병기간 동안, 가장 원했던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그의 옆에 있어주고, 단순히 기능적인 존재에서 벗어나,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온기를 나누고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실은 모든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일지도 모른다.
삶은 너무나 유한하고, 우리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다. 하지만 이 한없이 허무하고 무상한 이 삶 속에서도 만약 우리가 누군가와 조금의 온기를 나누고, 또 누군가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 수 있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이 삶 속에서 어떤 기능을 완벽히 해냈는지와 무관하게, 그 사람의 인생을 정녕 덧없다. 헛수고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인생에서 정말로 원했던 것은, 거창한 구원도, 완벽히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완벽한 해결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넘어지지 않도록, 혹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잠시 잡아주는 따뜻한 손 하나,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이 유한한 삶을 충분히 살아볼 만한 것이라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 우리 모두 고요하고도 차갑게 죽어갈지언정, 이 차가운 세상 속에서 **그냥 여기 있어도 된다**는 그 확인만 받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그리 무용하지도,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