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품은 빛

심해의 아귀처럼.

by 따뜻한 불꽃 소예

빛은, 언제나 밝은 곳에만 있는 것일까?


밝은 사람이 좋다. 자신의 어둠을 타인에게 전파하지 않는 사람, 그 정도의 깊이가 있는 사람이 좋다.


얼마 전 스쳐 지나간 이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배우자나 파트너를 구할 때 체크 리스트처럼 정리된 글에서 발견한 구절이었던 거 같다.


우리 모두는 어둠을 싫어한다.

그래서 그것을 숨기려고 한다.


하지만 어둠 없이 태어나는 생명은 없다.


주말에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끝냈다.

그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어두운 이야기에 나를 데려갔다. 나는 그 소설 속 인선이 엄마에게 너무 심하게 감정이입을 해버려서 주말 오전 한 카페에서 오열을 해버렸다. 어쩌면 그녀가 말하고 묘사한 인선이 엄마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특히 이 두 문장에서 멈춰 섰다.




'엄마는 자주 꿈을 꿨어. 숨을 죽여 몸서리를 치고, 이따금 들고양이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흐느껴 울었어. 그 모습, 그 소리가 나한테 지옥이었어. 저 사람이 내 인생을 더 이상 어둡게 채색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밴 듯한, 오래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



그녀 문장이 이토록 나를 흔들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그 고통의 감각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낮에는 나는 강인한 엄마, 직장인이 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단단한 척 무던히 애쓰는 내 모습에서 그녀가 묘사한 침통한 침착성이 배어 나온다. 또한 나 역시 오랜 시간, 아이가 잠이 들면 그 옆에서 나도 모르게 정말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걸 내며 흐느껴 울고 있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며 작가는 그 칠흑같은 바닥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느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어둠에서 느낀 감각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심해 속 한줄기 빛을 발하는 무엇인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해본다.


깊이 아파본 사람만이 어쩌면 그 고통의 끝까지 가 보고,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들여다본 사람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위로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 어둠과 우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때로는 사랑이 골수가 빠져나가는 듯한 고통이라는 것을 그리고 심장이 오그라들 듯 조여 오는 감정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사랑에 대해 얄팍하게 함부로 정의 내리지 않는다.


대신, 꺼질 듯한 성냥불일지라도 계속해서 불을 지피는 사랑을 해야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와 내 아이의 인생이 빛으로 채색될 수 있기를,


그러나 그 빛은 마냥 밝은 정오의 햇살은 아닐지언정


심해아귀의 빛처럼, 어둠을 품은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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