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고통 없이 영원히 깨닫지 않으리..
남편과 산책을 하다 햇볕이 좋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고통 없이 영원히 깨닫지 않고 그냥 이대로 살래? 아니면 고통을 겪고 깨달음을 얻을래?"라고 묻는다면 남편은 주저 없이 고통 없이 깨달음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 맞다. 나 역시 누군가 지금 나와 내 가족이 겪고 있는 이 삶의 무게와 고통을 생각하면 나도 그와 같이 말할 것이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고통을 원하겠는가.. 하지만 우리에겐 이미 고통이, 아니 절망이 찾아왔다. 그것을 한낱 인간인 내가 뒤집어엎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절망 속에 빠져있을 때는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삶이 평온해 보이고 내 삶이 가장 비극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영원히 그 수렁텅이에 빠져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마도 빠져나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나, 아니 우리는 많이 성숙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삶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좀 더 넓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치병을 위해 시골 주택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택을 고치면서 이런저런 충돌이 발생했다. 아이랜드 식탁을 어디에 두고, 조명은 어떻게 하고 이런저런 자잘한 충돌... 남편은 굉장히 꼼꼼한 성격이고 항상 뒤를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나는 일단 해보고 나중에 고치자라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극과 극인 성향은 매사 부딪힌다. 예전 같으면 소리를 지르며 서로를 향해 레이저를 쏘고 증오심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일단 내가 참았다. 저 원수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나라고 들었다. 남편은 오늘 산책을 나와 그 얘기를 꺼내며 내게 얘기했다. '참 고마웠어. 네가 참는 게 느껴졌어.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이렇게 싸워야 하는 이유가 뭐지? 내가 건강해지려고 주택에 가는 거고 우리가 행복해지자고 이러는 건데, 그놈의 아이랜드 식탁 위치가 뭐라고....' 그러면서 남편은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난 너무 없이 크고 엄한 아버지의 기대가 커서 어릴 때부터 실수를 하면 안 되는 환경에서 자랐어. 그래서 항상 뒤를 생각하고 꼼꼼해지고 철저해지려고 한 거 같다. 실패를 용납하는 환경이 아니니깐.. 근데 당신은 그게 아니니깐 항상 같은 상황에서도 그냥 해보자, 저지르고 보는 성향인 거 같아..' 그래 맞다. 나는 순간 남편을 보며 측은지심이 들었다. 난 그동안 내 유년 환경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를 잘 돌보지 않았고.. 등등의 불만들 하지만, 남편을 보며 난 나름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구나, 아버지가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 주셨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각자가 겪는 고통과 절망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상대적이다. 여전히 나는 고통과 깨달음 없는 삶을 살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고통 덕분에 내 코로 들어오는 이 신선한 산내음과 새소리 그리고 따스한 햇볕, 이 시간을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편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 남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지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