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by 따뜻한 불꽃 소예

남편이 네 번째 항암치료를 위해 서울로 올라갔다. 어둑어둑 이른 새벽, 스산한 공기를 마시며 남편은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바지런히 움직였다. 남편의 부산한 움직임에 나 역시 잠이 깨었지만 일부러 자는 척했다. 마음이 아파서 괜히 아는 척하기가 싫었다. 어떤 이들은 표적항암제를 사용해서 그나마 세포독성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은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던데 불행히도 남편에게는 표적 항암제를 하기 위한 변이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아, 고전적인 방법으로 항암치료를 이어나가고 있다. 세포독성 항암치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심각한 부작용 때문일 것이다. 남편의 경우 항암주사를 맞은 첫 주에서 보름까지 심한 구토와 오심 그리고 어지럼증을 보인다. 독극물을 몸안에 삽입하여 암세포를 사멸시켜야 하니 어디 몸이 성할 수 있을까.. 남편의 머리카락, 코털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다시 난다고 하니 그거에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일곱 살짜리 우리 아들은 아빠가 대머리가 되었다며 유치원에도 소문냈다고 한다. 아빠가 대머리라서 웃긴가 보다.. 참으로 웃픈 상황이다. 초기 암의 경우에는 다양한 치료법이 있다. 하지만 남편과 같이 말기암 그리고 희귀 암의 경우에는 쓸 수 있는 치료법이 많지 않다. 큰 시누이는 남편의 항암치료가 끝난 뒤를 걱정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기도 하다. 독한 항암치료가 끝나서 좋기도 하지만,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앞 날을 걱정하고 있기엔 현실이 너무 벅차기에 나는 그냥 오늘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남편이 아프고 난 뒤로 난 미래를 꿈꾸지도 생각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 미래가 아직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컴컴한 터널을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우리 가족에게도 여명이 비추는 날이 오겠지.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에서 모모라는 주인공이 이웃 할아버지에게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냐'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우리 각자가 맞닥뜨린 이 가혹한 인생 앞에 우리 각자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내 앞에 놓인 이 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나는 또 하루를 살아가야 하고,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 하지만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리고 내 주위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만약 그것마저 없다면 이 엄청난 현실 앞에서 내가 견뎌낼 수 있었을까.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오빠의 사랑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들은 나를 버티게 하고 성장시키고 아픔을 이겨내도록 항상 옆에 있었지만, 내가 그것을 미쳐 눈치채지 못했다. 내 사랑하는 가족과 새언니 그리고 이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을 선물해 준 친구와 나를 토닥이던 언니등등이 없었다면, 정말이지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고난은 너무 더 많이 힘이 들었을꺼 같다. 그래서 모모에게 말하고 싶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어... 혹여 이 글을 나와 같은 상황에 놓인 가족이나 환우가 보신다면, 아니 주위에 그런 사람을 본다면 꼭 그들을 안아주고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없이는 사람은 살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