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는 왜
적벽을 선택했을까?

구조로 읽는 삼국지(三國志) | 제7장 적벽대전 (2-1)

by 이현민

공격에서 방어로 바뀐 조조의 상황



남부의 지리와 기후


형주(荊州) 북부를 장악하기 위한 조조(曹操)의 결정에 영향을 준 첫번째 구조적 여건은 작전 환경입니다. 넓은 평야지대와 더불어 각 도시들간의 교통망이 발달한 중원(中原)은 대규모 보병(步兵)의 이동과 작전수행이 용이했고, 동시에 기병(騎兵)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장강(長江) 유역에 위치해 북부와 다른 지리적, 기후적 특성을 가진 남부의 작전환경은 중원과 달랐습니다. 산림과 습지가 많은 지리적 특성은 대규모 보병 작전 전개는 물론 조조의 핵심전략자산인 기병의 운용을 제한했습니다 (주7-1).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형주 북부의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병력과 물자 이동에 필요한 남부의 육상 교통로가 중원에 비해 열악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 두번째 구조적 여건으로 연결됩니다.


장강(長江)


두번째는 작전 실행 여건이었습니다. 중원에서는 육상 교통로가 군사작전 수행을 위한 물류시스템의 기반이었다면, 형주는 물론 양주(揚州)의 경우, 이러한 역할은 장강의 수로(水路)가 수행했습니다. 즉, 중원에서는 육상의 주요 거점 도시 및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요새들이 군사적 거점이었고, 이들이 곧 군사작전 실행의 기반이 되었다면, 남부에서는 수상교통로, 즉 장강 자체가 군사작전 실행의 기반이었던 셈 입니다. 장강에 대한 통제권이 곧 형주와 양주 지역에서의 군사작전 범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고, 이는 곧 세번째 구조적 여건으로 연결됩니다.


수군(水軍)


세번째는 작전 수행 역량이었습니다. 대규모 보병위주로 구성된 조조의 병력은 규모를 통한 압박이라는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지만, 형주의 지리적 환경과 장강의 전략적인 역할로 인해 그 효과가 제한되었습니다. 또한 익숙치 않은 기후와 토착병으로 인해, 유비와 손권의 동맹이 결성될 당시 조조군의 비전투손실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더불어, 형주의 지리적 특성과 조조의 남서부 통합 계획을 고려한다면 형주의 병력, 특히 수군에 대한 완전한 통합이 필수였습니다. 그러나, 유비(劉備)의 지지를 받았던 유기(劉琦)의 이탈로 인해 조조가 통제할 수 있는 형주 수군(水軍)의 규모는 예상보다 축소되었고 이에 조조는 당초 예상과 달리 장강을 통제하기 위한 역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조조는 유비와 유기, 그리고 양주의 손권(孫權)의 위협을 익숙치 않은 환경에서 대응해야 하는 다소 복잡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먼저 조조는 자신의 주력을 양양(襄陽)과 강릉(江陵) 등 형주 북부의 주요 도시에 배치하여 육상 방어선을 구축함과 동시에, 남부의 물류 및 군사작전의 핵심인 장강에 수상방어선을 구축함으로써, 유기와 손권의 수군에 대응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조조는 장강의 수상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거점으로 적벽(赤壁)을 선택하게 됩니다.



왜 적벽을 선택했을까?



조조가 적벽을 선택한 첫번째 이유는 지리적 위치입니다. 적벽은 형주 동북부에 위치한 장강 유역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강하(江夏), 서쪽으로는 강릉, 북쪽으로는 양양으로 이어지는 장강 수상교통로의 교차점에 위치한 지역이었습니다. 마치 중원의 기주(冀州)와 연주(兗州), 사례교위부(司隸校尉部)를 잇는 교통로의 중심에 위치한 관도(官渡), 그리고 한중(漢中)과 장안(長安) 사이의 오장원(五丈原)처럼, 육상전의 관점에서 적벽은 거점간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방어선 구축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두번째는 방어에 필요한 병력의 규모였습니다. 적벽은 주변의 다른 지역 대비 강폭이 약 1.5 km정도로 좁은 편이었기에 다른 장강 유역보다 육상에서의 방어 및 수상 봉쇄가 용이한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역병 등으로 인한 병력 손실 및 이미 확보한 형주 북부 거점 방어를 위한 병력 분산, 거기에 더해 형주의 군사력까지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면서 병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던 조조는, 유기와 손권이 장강을 통해 전면적으로 공격할 경우, 이에 대한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방어의 밀도가 희석된 조조에게 적벽은 수상 방어선 구축에 그나마 용이한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지도 13. 형주(荊州)의 주요 도시 및 격전지



조조의 적벽 방어선



지리적 위치 및 병력 상황을 고려한 조조는, 장강 수상교통로를 완전히 봉쇄하기 위해 적벽에 수상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육상과 달리 성벽과 같은 물리적 방어선을 축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조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통해 연환계(連環計)로 알려진 방법, 즉, 수백척의 함선을 서로 단단히 연결하는 방법으로, 장강 위에 물리적 방어선을 설치했습니다. 이를 통해 조조는 강하의 유기와 유비, 그리고 손권이 장강을 군사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차단함과 동시에, 함선을 연결하여 육상과 같은 전투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육상에서의 전투에 익숙한 자신의 병력이 적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적벽 방어선을 통해 유기와 유비, 손권의 주력인 수군의 이동로를 통제하고자 한 조조는, 이와 더불어 적벽 인근 강안 지역에도 육상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앞서 언급한 병력 운용이 어려움으로 인해 그 효과는 제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육상전의 관점에서, 조조가 적벽에 수상방어선을 구축한 것 자체는 적 주요 기동로인 장강의 봉쇄와 더불어, 자신에게 유리한 전장 환경 조성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조조의 수상방어선은 조조가 예상한 것 처럼 기능하지 못했고, 그 기능의 실패는 조조가 예상을 넘어서는 심각한 타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주7-1.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과 삼국지(三國志) 주유전(周瑜傳)과에 따르면, 중원은 도로망이 발달한 평야 지대인 데 반해 장강 이남은 '수향(水鄕)'이라 불릴 만큼 습지와 산림, 호수가 밀집된 지역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은 조조의 강력한 무기였던 기병자산을 무력화시켰으며, 대규모 병력 이동을 육로가 아닌 수로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보급망의 취약성을 노출시켰습니다. 이는 조조가 형주 북부의 주요 거점도시인 양양과 강릉을 확보한 뒤에도 장강 이남으로의 확장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하드웨어의 구조적 요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