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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서 Aug 24. 2018

디자이너, 먹고살기의 고단함

직업의 무게

수업시간에 내가 만난 학생들 중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꽤 많이 있다.

회사를 그만 둔 이유는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가 깊숙한 내면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끼게 된 내 생각은 많은 학생들이 아직 직업의 무게를 깊이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에 있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 속에서 취업 후, 1년 이내의 퇴사자 수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입사한 회사가 자신의 비전과 맞지 않을 수도, 아니면 회사환경이 너무 열악할 수도 있고 폐업이나 급여가 연체되는 문제를 안고 있을 수도 있다.

다른나라에 비해 급여는 낮고 일하는 시간은 더 길기 때문에, 사회초년생에게 사회는 너무 가혹하고 힘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동일한 감정을 경험했었고, 그렇게 첫 회사를 퇴사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후회할 일들이 여러번 있었지만,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고 나서 첫번째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다면 첫 직장을 쉽게 그만 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더 진득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내공을 쌓았다면 커리어 관리가 더 잘 되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첫직장은 참 업무강도가 쎈 곳이었다. 아침 9시에 출근을 하고, 퇴근시간이 없었다. 당시에는 경쟁 PT를 통해 프로젝트를 입찰받는 시스템이 많았기 때문에 신설 대행사에서는 경쟁 PT에 모든 것을 걸고 준비를 해야 했다. 경쟁 PT는 시간과의 싸움이었기에 그일에 투입이 되면 집에 가는 시간은 사실 정해진게 없었다. 새벽 1-2시는 물론이고 PT를 하루 앞둔 날은 회사 책상 앞에서 잠을 자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회사가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일하면 직원채용이 매우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당시에 주 5일 근무는 대기업이나 관공서 정도에서만 시범 시행되었기 때문에 토요일까지 밤낮없는 업무는 숨쉴 시간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회사라도 처음에는 디자이너가 되어서 즐거웠고, 학교에서 했던 야작의 연속성이 느껴져서 부당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체력이 좋지 못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열정이 가득하더라도 매일을 그렇게 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가 첫 직장을 퇴사할 결심을 한 것은 회사에 경력직으로 들어온 친한 언니의 영향이 컸다.

다른 회사에서 온 언니에게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유학이나 대학원에 대한 다른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회사와 불화가 있었던 그 언니는 퇴사를 하고, 믿고 의지했던 나의 사수가 퇴사를 해버렸다. 오랫동안 의지하고 지낸 두명이 떠나고 나니, 나는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회사에 계속 남아 있는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작은 사건으로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을 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퇴사를 했다. 회사에서는 여러 조건을 걸고 나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남아 있는 것보다는 멋지게 퇴사를 하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을 했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 퇴사는 감정적이었고, 퇴사 이후에 대한 이직계획도 없고 백수기간의 자금계획도 없이.. 그렇게 누군가의 영향으로 결정되어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대학원을 다니면서 지인의 회사 몇군데에서 일을 했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는 일이 더 맞다고 판단을 했다. 정규직 직원이 아니었기에 소속감은 없었다. 회사의 프로젝트는 너무 지루했으며 사람들과의 교류도 이렇다하게 많지 않았다. 그저 회사의 급한 일을 해주러 온 애매한 위치에서 적당한 돈을 받고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전 직장이 더더욱 그리웠다.


이후 나는 대학원을 마치면서 다시 회사를 입사하게 되었고, 절대 자발적 퇴사는 결정하지 않기로 다짐에 다짐을 했다. 나의 첫번째 퇴사이야기와 비슷한 경험을 다른 누군가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만난 경력이 조금 있는 학생들의 대다수가 퇴사 후 구체적인 계획 없이, 공백기 동안의 자금계획도 없이.. 그렇게 퇴사를 한다.

회사에서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대부분의 이유는 일자리의 질이 낮다는 것이고, 더 나은 생활을 꿈꾼다는 것이다.




입사를 하는 것 만큼 퇴사 후, 계획도 중요하다.


퇴사를 하고 싶더라도 즉흥적 혹은 감정적으로 혹은 주변 친구들에 의해서 결정해서는 안된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는 것과는 다르다. 어렸을 때, 친구랑 같이 학원을 다니다가 친구가 그만두면 혼자 다니기 심심하니, 나도 같이 그만둔다. 그때는 친구가 가장 중요했던 청소년기였으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성인이다. 성인에게 친구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미래이다.


이직횟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일자리의 질이 좋은 회사로 이직이 어려워진다.

주니어에서 시니어급으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 불만은 있으나 떠나지 못한 채 직장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솔깃한 제안을 헤드헌터로부터 받았다. 유명 외국계기업의 이직 제안이었다. 서류도 제출하고 면접도 진행하고 2차 면접까지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채용이 진행되면서 이직이 성공적으로 되나... 기대를 가득 안고 있었는데, 결론은 불합격 통보였다.

헤드헌터에게 조심스럽게 거절 사유를 물어봤다. 업무에 적합해서 채용을 고려했으나, 최종 결정자께서 이직이 많은 사람은 선호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디자인이라는 직종의 특성상, 이직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안일하게 생각을 했는데, 잘못된 커리어 관리가 발목을 잡았다.


이직을 생각한다면 꼭 현직장에서 다음직장으로 바로 넘어가야 한다. 현직장을 다니면서 이직할 회사 지원을 하고 면접도 보고, 연봉협상도 해야 한다. 새로운 회사에서 입사 결정이 났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까지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지금의 직장을 유지해야 한다. 현직장을 유지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커리어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 둘째 월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 셋째, 나중에 이직사유를 아주 심플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퇴사를 하고 재취업준비를 하면 시간이 많아서 포트폴리오도 다시 새롭게 만들어 정리도 하고, 영어공부를 해서 더 좋은 직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 착각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자유로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해야하는 지 모르는 대부분의 퇴사자들은 그냥 백수로 전락해 버린다.


공백기의 시간이 흘러흘러 모아둔 돈도 다 떨어지고 조급해지면서 전직장과 다를 바 없는 회사로 또 다시 컴백을 하게 된다. 그냥 시간만 보내고 돈만 쓰고, 나태한 습관만 안고 그렇게 다시 모든 것이 원상복귀가 된다. 그리고 다시 불만이 쌓인다. 그리고 또 퇴사를 한다. 다시 또 백수가 된다. 이번에는 기필코 좋은 회사를 가려고 다시 대기업부터 지원을 하지만, 모두 탈락이다. 디자인도 그저 그렇고, 커리어 관리까지 제대로 안된 경력자를 선호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퇴사를 결정하고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공부를 하려고 한다면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행해야 한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동안, 생활비와 공부하는데 필요한 돈은 어디서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실력을 쌓기 위해 기간을 정하고 준비를 마치는 기간 그리고 회사를 지원하는 기간 등..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퇴사를 해야한다.

무턱대고 퇴사를 했다가는 그저 자유로운 백수가 될 뿐이다.


그렇게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재취업은 더 힘들어진다.

회사에 입사를 하는 것보다 퇴사 이후의 계획이 더 중요한 것이 이런 이유이다.



당신의 직업무게는 왜 그렇게 가벼운가?


퇴사를 하고 재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왜 퇴사를 했는지 물어보면 참 재미있는 답을 한다.

"그냥 쉬고 싶었어요."

"회사가 너무 별로 였어요."

"회사가 문제가 있어서 동료들이 모두 퇴사해서 저도 그냥 그만 뒀어요."


내가 첫직장을 그만 둘때처럼 어린 친구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젊은 날의 우리는 참 용감하다. 그리고 가볍게 생각을 한다. 월급이 한달쯤 안들어오면 뭐가 어때서?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역시 그랬으니까... 월급의 노예가 되기 싫었고, 내꿈을 쫓아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내꿈을 쫓으려고 직장을 그만두는 결심에 비해, 우리는 너무 나태하다. 그렇게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젊은 우리가 회사를 쉽게 그만 둘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내 한몸만 건사하면 되는 가벼운 마음 때문이 아닐까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는 옛날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IT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트랜드를 잘 따라가지 못해서 적자기업으로 전락을 했었다. 매년 발표되는 적자의 결과는 해년 6월이면 진행되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회사를 다니는 기간 구조조정을 매년 경험했으니, 익숙해질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그해에도 구조조정을 앞 둔, 5월이었을 것 같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팀 상무님께서 권고사직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윗분들의 눈 밖에 나면서부터 자리보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은 예상대로 였다. 회사에서는 2달 내에 자리를 정리해달라고 요청이 었었던 것 같다. 아마 보통의 우리였다면 더 이상 회사에 나와서 자리를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 소중한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분은 2달을 꽉 채우고 퇴사를 하셨다. 진행하던 업무에서도 모두 배제되고 회사에서 그는 투명인간이었지만, 매일 아침 8시에 출근을 하고 6시에 퇴근하는 일을 그렇게 투명인간으로써 계속 유지를 했었다.

회사를 다녀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회사 내에서 아무 업무에도 투입되지 못하고 밖으로 겉도는 일은 업무가 많은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세상에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으니까..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상무님의 딸이 고3이라서 딸아이가 충격을 받아서 공부를 하지 못할까봐.. 그리고 자신이 외벌이 가장이기에.. 자존심을 굽히고 2달간 투명인간으로 지내왔던 것이다. 아마도 나의 아버지도 그리고 여러분의 아버지도 일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존심을 버려가면서 가족을 위해 참았을 것이다.


아버지의 직업의 무게와 내 직업의 무게는 다른것일까?

나의 아버지 자존심보다 내 자존심은 더 소중한 것일까?

왜 그렇게 우리는 쉽게 직장을 그만두는 것일까?

정말,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퇴사를 결정하는 것일까?


이글은 월급의 노예로 살아라.. 라는 의미로 쓰는 것이 아니다.

도전이 필요한 순간, 정말 내가 잘해낼 수 있다는 판단이 생기고 준비가 되었다면 도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한다는 이유로 공부하는 백수로 젊은 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후반 즈음, 나의 친구들 중에 몇몇은 불안한 직장인으로 살기 싫다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10여년이 지난 결과, 그 친구들 중에 단 한명도 공무원이 된 사람은 없다.

그저 노량진의 소비자로 시간을 보내다가 나이를 먹어, 전업주부의 길을 택했을 뿐이다.




우리는 너무 가볍게 회사를 그만 두는것은 아닌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예전의 나를 포함해서, 내가 만난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퇴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만큼의 책임감은 없겠지만, 현실의 힘듦을 피하려고 하는 것보다

인생에 책임감을 가지고 직업의 무게를 견디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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