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시절이 있었지
일요일 아침에 이메일을 체크하는 게 아니었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은행에서 걸어 나오면서 왜 이렇게 일이 귀찮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따라 참 햇볕도 뜨겁네. 남자친구와 세인스버리에서 만나기로 하는데 문자 답장도 대충 대충 하면서 장을 보고 걸어나오다가 나잇대가 있어 보이시는 남성 한 분이 벤치에 앉아 서류같은 것을 진지하게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분이 혹시 일자리를 구하고 계시는 건 아닌지, 인터뷰라 준비라도 하시는 것은 아닌지, 혹시 딸린 가족들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취업을 간절히 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그 때에는 출근 시간대에 사람들이 튜브에 우수수 타 있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들 중의 한명이 되어서 그 사이에 낑겨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도 주말에는 주말이다! 라고 생각하며 토요일 일요일을 푹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정말 기쁠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때는 정말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쓰는 돈만 있고 들어오는 돈이 없어서 먹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어드밴스드 계좌 오픈을 하는 과정에서 데이터와 내가 제출한 서류에 차이가 있어서 브런치를 방문했는데 시간이 없으니 내일 은행에 직접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왜 이런거 하나 쉽게 쉽게 열지를 못하나 생각을 하다 문득
나는 최소한 은행 계좌를 열 수 있는 자격이라도 되지
라는 생각을 했다. 한때는 직업이 없어서 은행 계좌를 열기조차 쉽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한때는 정해진 집이 없어서, 집주소에 내 이름 앞으로 온 서류가 하나도 없어서 애를 먹던 때가 있었다.
나는 사실 세상에서 정말 행복한 사람 중 한명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5년짜리 비자를 받고, 큰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갈 수 있는, 미래가 있는 일을 하고 있고- 매 달 한달 쓰기 충분한 월급이 들어오고, 많지는 않더라도 저축 계좌도 있고, 회사 생활도 재미있고, 정시 출근 퇴근을 주로 할 수 있고- 그러므로 남는 시간에 운동도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건강한 음식을 만들거나 사먹을 수 있고, 뉴몰든을 가서 50파운드 가까이 하는 장을 봐올 수 있고, 뉴몰든을 다녀올 수 있는 주말이 있다.
내가 필요한 일자리가 있기에- 급한 프로젝트로 인해 내일 아침 8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일도 있고, 기본적인 것이 충족된다는 것이 익숙해져서 짜증마저 나는 일이 생기고, 은행 계좌를 열 자격이 있기에 - 은행에 전화를 해서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아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황이 딱히 달라진 건 없지만 일요일 하루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