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디에나 있는 리 Sep 06. 2021

어떠한 과도기를 지나는 시점

왜 나는 '취업준비'를 한다는 말이 쑥쓰럽고 어색한가

월요일 아침. 평일에는 알람을 6:15분에 맞춰놓고 일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일찍 일어나서  명상을 하고 운동을 가고 하는 그런  아니고^^ 적당히 밍기적대다가 일어나서 씻고 이불을 정리하고 옷장 앞에 서서 시리에게 오늘 날씨가 어떤지 물어보고, 그리고 뉴스를 짧게 듣고 버스시간을 확인하고 나오면~ ~ 7  정도 되는  같다. 버스를 타이밍 좋게  타고 지금 다니고 있는 공유오피스로 도착하면 8 정도.


오전 8 전과 후를 기점으로 길이 막히느냐 막히지 않느냐 / 버스가 복잡하냐 한산하냐가 갈린다. 그리고 공유 오피스는 핫데스크(지정석이 아님)라서 좋은 자리는  부지런을 떨어야 잡을  있더라. 좋은 자리라 함은 모니터를 사용할  있는 좌석인데, 랩탑만 가지고 있는지라 모니터가 하나 붙어 있으면 디자인작업을  때에는 확실히 수월하다. ( 물론 다른 작업에도 많이 수월하겠..) 그리고 오전시간이 오후시간보다는 집중하기도 쉽고 작업에 효율도  붙고, 여러모로 이것저것 알람도  오지 않거나 적게 오는 시간대라 방해받지 않고 이렇게(......  쓰기) 좋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마침 근처에 좋은 카페를 발견했는데  곳이 평일에는 8시에 문을 열어 주어서, 이렇게 일찍 나오면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보상을  주는 편이다. 오피스에 커피가 있지만 확실히 사마시는 커피만 못하다. 물론 사마시니만 못한 카페는 안간다(^^;)


요즘은 주7일 공유오피스에 나오고 있다. 이곳이 24/7 오픈해 줘서 그런것도 있지만 사실 그 외에 다른 걸 크게 할 게 없기도 해서다(...) 하루가 아주 깔끔하게 나뉜다. 일어나서, 오피스에 오고, 저녁시간에 나와서, 운동을 가고, 잔다(..) 아침에 8-9시에는 오피스에 내 몸이 있고, 5-6시 즈음에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7-8시에는 내 몸이 짐에 있고, 10-11시에는 누워 있다(네?) 아주 가끔씩 약속이 잡히기는 하지만 그것도 2주에 한번 정도. 더 잡고자 한다면 잡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무튼 '그런'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더 연락을 하지 않고, 더 만날 사건(?)을 만들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취업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올해 초에 한국에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이렇게 지낼 줄 생각도 하지 못했었고, 내가 친구들과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리라는 생각도 못 했었고, 만나고 있던 사람과 헤어지리라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이렇게 길게 가질 수 있을 줄도 몰랐다. 그 결과가 한국에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줄도 몰랐다. 내 인생이야 늘 놀라움의 연속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통제가 가능한 선이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유달리 그 놀라움의 난이도가 높다. (^^;)


원래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무섭거나 피하는 것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면서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인생의 1/3 정도를 한국 밖에서 생활했고, 그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나 스스로를 중심으로 단단하게 잡을 줄 아는 삶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일할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피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행위(?)다. 고생길이 훤히 열렸다는 생각을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해서 나온 결론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그런 고생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인생 전반에 쌓인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해서 나온 결과가 이거라면, 내 인생이 나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히 좋은 방향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지 지금의 내 status 가 어색하다. 차라리 좀 절실하기라도 했다면 이렇게 시간을 느긋하게 보내지 않고 빠르게 포폴을 쳐내서 무언가를 하고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작년에 열심히 일해놓은 게 있기도 하고, 또 돈을 굴리고 있는 게 마이너스는 아니어서(...).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기도 하고 해서 크게 돈이 나갈 일도 없고. 플러스로 워낙에 알뜰살뜰 잘 챙겨 사는 사람이라. 정말 여러모로 여유를 부릴 이유가 있고, 그게 나를 '취업준비' 중인 상태를 지속시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을 만나고자 할 때에도 말이 길어지는 게 싫고 둘러대는 게 싫다. 스스로가 잘나서 겸손해서 말이 길어지는 건 괜찮은데 뭔가 구구절절 이래서 제가 지금 (백수예요^^;) 이라고 말하는 것도 싫고, 내가 현재 상태를 상태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살짝 속상하고 그렇다(..) 당당하면 무엇을 해도 당당하다. 왜 나는 나에게 이런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스스로의 사고에 갇히고 또 빠진다.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포트폴리오는 얼마나 솔직하고, 얼마나 나의 실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는 지금 허풍을 떠는 것은 아닐까? 할 줄 아는 것 그 이상의 것들을 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내가 나를 너무 낮추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난 내가 이정도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건 내가 나를 과대/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남을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고 재미있어 보이는 회사들을 보면 내가 디자인을 더 곁눈질로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혹은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동시에 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방식은 잘 모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질서나, 한국에서 당연히 아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내가 모르고 또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그런걸 곁눈질로라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믿어 의심치 않는 건 일을 잘 하고, 사람들을 보며 좋은 건 습득하고 좋지 않는 건 거울삼아 하지 않으려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동시에 '한국에서 일하는 방식' 을 몰라도 괜찮은 곳에 가서 일을 하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선뜻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섣부르게 내미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UI/UX) 디자인 분야는 코로나로 수혜를 받은 분야 중 하나이고, 영국에서도 락다운으로 각종 산업군의 마이너스와 도산행렬을 보면서도 나는 일하느라 1년 동안 휴가 딱 3일 썼다... 한국의 경우에도 취업난인가? 정말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사방팔방 상시 필요한 건 일을 잘 하는 디자이너고 모든 회사에서 늘 뽑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더 급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이 상태를 빨리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인생에서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길게 가져보는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 주 7일 오피스-운동을 가는 생활의 반복이라면 음? 뭔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여유'는 아닌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 만나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면서 묘한 마음이 든다. 하루는 참 빠르게 흘러간다.


내 인생에 이런 시기가 온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래서 그때 내가 그랬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거라 믿는다.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때 분명히 그랬고 나를 믿고 행동했을 때 남는 후회는 없었다. 당시에는 잘 모를 수 있지만 미래의 나는 결국 왜 그랬는지 알게 되더라. 과거에 그랬으니 분명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단지 지금의 나는 좀 혼란스러운 시기에 있고, 그리고 언젠가는 이때를 되돌아보며 그때 그랬었지 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브런치라는 오픈된 공간에 글을 적어 놓고자 한다.


그래도 지금은 방향이라도 있다. 개인 블로그에는 적어놓았던 것 같지만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정말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때는 정말 너무 막막했고 인생이 나에게 왜 이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안개가 걷힌 건 아니지만 그래도 따라갈 수 있는 도로를 발견한 기분이다. 앞이 보이는 건 아니어도 발 밑을 보고 길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갈 정도의 수준이다. 이 정도면 괜찮다. 더 힘들었던 때가 있었고 그 시기는 지났다.


안개는 걷힐 일만 남았다 믿는다. 이번 한 주도 잘 걸어 봅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