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두 번째

#11. 대출받은 시간의 사용

by 이재구

3년 전, 웬만한 기억은 다 소각되고 없어질 기간이다. 몇 장 남지 않은 사진과 몇 줄 남기지 않은 기록으로

지금의 일기가 가능한 것은 어쩌면 인도에서 가불 받은 시간 때문일 것이다. 여행 중에 꽤 높은 이자로 시간을 대출받았는데 이 시간의 대부분을 여행에 대한 복습과 기록으로 채웠다. 특히 남쪽 여행을 마치고 북쪽으로

향하기 위해 다시 들른 델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보냈었다. 다시 돌아온 델리의 빠하르간지는 무척

이나 반가웠다. 첫날 묶었던 숙소에 짐을 풀고 익숙한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반가운 골목을 돌아 기억에 남아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으며 나를 알아보는 주인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대부분 뜨내기 손님들이 다녀가는 곳이라 나 역시 잠시 들린 손님에 불과 하지만 사람들은

반갑게 맞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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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가 아닌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고 첫날 겁이나 가지 못했던 곳을 구경했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과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거나 수다를 떨기도 했고 여행자들이 드문 동내를 돌아다니기도 했으며 관공서

건물을 잘못 들어가 찍은 사진을 삭제당하고 쫓겨 나기도 했다. 먹을 것을 사들고 공원에 앉아 대학생들을

구경했고 엽서를 썼으며 엽서가 마무리될 때쯤 커플들의 애정행각을 지켜봤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 시장에 들러 물을 사고 과일을 샀다. 지난 곳에서 샀던 기념품을 정리하며 비좁아진 배낭을 비우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간 필요 없는 물건들을 내다 버렸다. 달러로 챙겨온 돈을 들고 다니다 환율이 조금이라도

좋은 환전소를 찾으면 환전을 했으며 새로운 물건으로 가득 찬 배낭 사이사이에 환전한 루피를 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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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로운 공간으로써 매력이 떨어진 공간은 여행이라기 보단 지난 여행을 기록하기 좋은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숙소 침대에 누워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고, 복습하며 차마 찍지 못한 장면을 후회하기도 했다. 이런

복습의 과정 안에서 금방 잊힐 뻔한 기억들을 끄집어내 지나버린 여행의 아쉬움을 다시 쌓기도 했다. 즉 비싸게 대출받은 시간을 통해 지난 여행의 시간을 기억 속에 기록해두었다. 이미 지난 경험을 다시 경험하는 셈이니

어쩌면 가장 비효율적인 여행을 하는 여행객이었을 것이다. 북쪽에서는 핸드폰이 먹통이 되니 그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심칩을 새로 사야 한다 했지만 그깟 데이터쯤이야 와이파이 되는 카페가 많을 것이라는

막연하고 짧은 생각과 북쪽에서만 쓸 수 있는 유심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한국에 아직 별일 없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상태로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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