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마날리, (1)여드레만의 포근함
대한민국에서 안 가본 곳이 없다. 심지어 강원도와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안 살아 본 곳도 없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많은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보통의 첫 경험은 날씨다. 의정부에 살다가 부산에 갔을 때
부산 겨울의 포근함에 대해 감탄했고 부산의 포근함에 익숙해질 무렵 이사 간 대전의 추위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끝에서 끝으로 이사를 했다 한들 대한민국의 날씨 환경은 그곳이 그곳이었고 별로 색다를
것이 없었다. 추워 봤자 1월의 대한민국은 전부 겨울 이었고 8월의 대한민국은 여름이었다. 통일성이 있다는
것은 지리과목으로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지만 어느덧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경험은 한정되어 한 나라에는 하나의 계절만 가지고 있다는 무의식의 틀이 자리 잡게 되었다. 마날리는 인도의
스위스라고 불리는데 그만큼 날씨가 델리와는 많이 달랐다. 가이드 북에 있는 사진상으로도 침엽수림이
자리를 잡은 색과 모양새가 여태 경험한 것 들과 많이 달라 보였다. 하지만 내 사고의 범위상 그리고 이전
인도 여행의 경험상 뭐 그리 다르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날리에 대한 생각이나 기대를 안 하고 있었다.
사실 무관심했다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챙겨야 한다고 했던 긴 옷은 가서 사면 된다는 생각에 하나도 챙기지 않았고 이불은 얇은 침낭이 하나 더 있으니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히말라야를 직접
본다는 생각과 빙하에서 녹은 물을 직접 본다는 약간의 설렘, 라닥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들러가는 곳이라는 생각뿐 더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딱히 특별날 것 없는 마날리를 가기 위해 델리에서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렸다. 중간에 몇 번 휴게소에 멈춘 것
같았지만 어렴풋이 기억이 날뿐 자느라 기억은 나지 않았다. 버스의 엔진이 천천히 움직이고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한참 만에 도착한 마날리는 이전에 경험한 인도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는 반팔에 반바지 차림의 여행자를 완벽한 이방인으로 만들어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침엽수림과 회색바위 그리고 긴팔 긴바지의 사람들은 이곳의 날씨를 말 한마디 없이 그려냈다.
오랜만에 따듯한 국물이 생각나는 곳 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에서 내려오는 안개가 자욱한 아침은 학생
시절 수련회 둘째 날 아침을 생각나게 했다. 그리고 함께 내려오는 차가운 공기는 가본적 없는 스위스를
인도에서 경험시켜줬다. 마날리는 크게 올드마날리와 뉴마날리가 있는데 내 숙소는 뉴마날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숙소로 가던 길에 보았던 수 많은 카페와 빵집은 빵과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곳이 천국인가 싶은 감사함을 느끼게 만들어 줬으며 산책하기 좋아 보이는 길은 도착한 순간부터 설렘을 가져다 주었다. 길고 긴
길을 지나 숲 한가운데 자리 잡은 숙소가 나타났다. 숙소 앞에는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린 천(川)이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으며 공기는 차갑지만 따듯하게 비치는 햇빛은 마른 이불을 덮은 듯 포근함을 가져다 줬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따듯한 홍차와 빵을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따듯한 물로 샤워를 했으며 잠시 동안 기분 좋은 잠에 들었다. 더위에 지쳐있던 나에게 마날리는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