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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민 Mar 07. 2022

안녕, 할아버지

나의 추억이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며

할아버지가 또 응급실에 가셨다. 벌써 두 번째다. 응급실에 가게 된 이유는 궁금하지 않다.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말로는 할아버지에겐 시간이 없다고 한다. 29년을 함께 했던 할아버지가 내 인생에서 조만간 추억 속으로 살아진다는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하루도 빠짐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물샘을 진정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데 이별을 생각하니 여간 적응이 안 되는 요즘이다. 그래도 알고 있다.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쯤은.


그래서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기록해보려 한다.


01

할아버지 댁은 평택이다. 내가 어릴 적엔 차는커녕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면허가 없었기에 할아버지 댁에 갈 땐 꼭 시외버스를 타고 갔다. 아직도 어머니, 아버지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갔던 그날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02

할아버지 성함은 이정호다. 초등학생 시절 나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의 이름이 하정호였는데, 내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꼭 할아버지 이름과 같다고 알려주시곤 했다.


03

할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 나에게 정말 질문이 많다. 내 학교며 직장 이야기까지 다 알고 계신다.


04

할아버지와 대화할 때면 할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기특하다고 해주셨다. "어떻게 그 고등학교를 알고 갔냐, 어떻게 군대를 지원해서 갈 생각을 했냐, 어떻게 그 직장에 들어갈 생각을 했냐"며 항상 기특해해 주셨다.


05

할아버지는 나의 고등학교 졸업식과 대학교 졸업식 모두 와주셨다. 나의 학사모를 쓰시곤 멋지게 사진 한 장도 찍어가셨다.


06

나를 참 많이 아껴주신다. 찾아뵈면 항상 많은 걸 물어보시면서도 나에겐 늘 "힘든데 왜 왔어"라는 말을 하신다.


07

할아버지는 나를 보면 족보부터 꺼내 드신다. 앞으론 내가 이어나가야 하는 대라면서 많은 것들을 말씀해 주신다. 죄송스럽게도 아직도 난 외우질 못했다. 화의군파 까진 알겠는데 내가 16대인지 17대인지는 아직 헷갈린다.


08

할아버지는 호기심이 많으시다. 어릴 적 못 배운 것에 한이 맺히셨는지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고 하신다. 주로 텔레비전을 통해 정보를 얻어가시지만 정말 척척박사시다.


09

할아버지는 농부였다. 어릴 적에 우리 집 쌀은 다 할아버지 논밭에서 가져온 쌀이었다. 지금은 힘이 많이 없으셔서 농사를 짓진 못하시지만, 무거운 쌀포대쯤은 가볍게 드시던 강한 사람이었다.


10

내가 전통주를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곤 줄곧 나에게 한산소곡주 이야기를 해주신다. 할아버지 고향이 서천이라며 한산 소곡주에 잘 아신다고 말씀해주셨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내용보다도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셨다.


11

할아버지는 나에게 오디라는 열매를 처음 알려준 사람이다. 동시에 오디가 뽕열매라고도 알려주셨다. 방학숙제로 했던 일기장에 이 내용을 써갔더니 담임 선생님이 이런 것도 아냐고 칭찬해주셨다.


12

할아버지는 눈물이 많으시다. 친인척들이 모일 때마다 우시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빠 형제들은 할아버지를 놀리곤 했었는데, 할아버지는 늘 좋아서 흐르는 눈물이라고 대답해주셨다.


13

할아버지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에라이 똥 쌀 놈"

이야기가 잘 안 통할 때 "에라이 똥 쌀 놈"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하곤 했다.


14

명절 때 온 가족이 모이곤 하면 할아버지는 나에게 슬며시 다가와 "어때? 형제들 이렇게 모이니깐 좋지?"라고 자주 묻곤 하셨다. 할아버지가 가족들을 생각했던 그 마음이 이제는 나에게 온전히 전달되어, 나 역시 할아버지를 더욱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부작용이 있다면 더욱 애틋하고 그리운 존재가 됐다는 거?


이렇게 많이 아프신 줄도 모르고 최근에 우유를 사들고 할아버지 댁에 방문했다. 잘 드시면 금방 괜찮아지시겠지 싶은 마음으로 사들고 갔었다. 할아버지는 우유 작은 팩을 조금 마시더니 금세 배가 부르다 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분명 유통기한이 지나도 안 버릴 실 것 같아서 유통기한을 따로 사진으로 찍어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할아버지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사진첩을 보다가 찍어놓은 우유의 유통기한이 보였다. 어쩌면 나의 할아버지는 이 우유보다도 더 짧은 시간만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너무 과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난 이런 생각에 타고난 사람인 걸.


이번 주에도 할아버지를 찾아 뵐 생각이었다.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그런데 오늘 입원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입원을 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게 된다. 면회가 모두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는 아직 할아버지에게 못 드린 선물 하나가 있는데, 이걸 보며 앞으로 어떻게 참아내야 할지 걱정이다.


할아버지의 눈물은 늘 기쁨의 눈물이었는데 저번 주 할아버지를 찾아뵐 때 나를 보자마자 우시더니 너무 슬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간신히 눈물을 참을 수 있었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데 할아버지 댁만 가면 조용한 편이다.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묵묵한 손자였다. 할아버지는 나를 많이 좋아해 주셨다. 우리 할아버지도 묵묵한 편이라 그런지 표현을 잘 하시진 못했지만. 항상 내 걱정뿐이셨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 시간이 얼마만큼 없을까 싶었는데, 내 눈앞에 있는 음료의 유통기한보다도 짧은 인생만이 남았다. 29년간 함께 했는데, 지난 설날에 목을 쭉 내밀며 호기심 넘치는 아이처럼 티비를 보셨던 모습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앞으로 찾아올 이 슬픔을 어떻게 어르고 달래야 할지 감히 상상도 안 간다.


그저 할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해지셨으면 좋겠다.


생각이 날 때마다 나름 글을 업데이트했다. 글을 쓰면서 '생각보다 나는 할아버지와 많은 추억을 쌓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더 슬퍼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한 발짝만 더 다가갔었더라면 정말 무궁무진한 추억을 만들어 나갔을 텐데 하곤 말이다.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 또한 할아버지와 함께 영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빠·엄마·동생과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 슬픔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이제는 하게 됐다. 이별을 맞이한 관계는, 가슴속 깊이 잘 간직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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