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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민 Jun 28. 2022

슬픔이 비집고 들어올 틈 없이

밀도 있게 살아가자.

벌써 시간이 많이도 흘렀구나 싶다가도 밀도 높게 쌓여있는 경험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다 보면, '벌써'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문득 찾아온다.


내 나이 스물아홉. 머릿속을 아주 잠깐 손으로 휘젓기만 해도 잡히는 추억들이 한 움큼이다.


숨어있던 추억은 그 유효기간이 다 다랐을때쯤 수면 위로 떠오른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었기에 앞으론 잊지 말라고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건지 혹은 쌓여진 추억을 잊고 살던 나에게 벌이라도 내리는 것인진 모르겠지만...


오늘 나는 잊고 있었던 소중한 추억 하나를 되찾게 됐다. 바로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다.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와 연세가 비슷하셔서 할아버지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외할머니가 떠오르곤 했다. 참 나쁜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장례식에서 했던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오늘에서야 듣게 됐다. 시간이 흘러 사람이 늙고 죽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당연한 일이라고 아무리 되새겨봐도 불안·허무·좌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떨쳐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외할머니와의 추억 새록새록 떠올리게 됐다. 함께 동네 산을 올라가고, 외할머니 댁에서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청국장을 보글보글 끓여 먹던 경험들을 말이다.


생각보다 수많은 추억들이 떠올라서 한번 더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를 느끼게 됐고, 비로소 '벌써'라는 단어를 덜어 내게 됐다.


세월에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추억이 녹아 내려져 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빠르다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지나간 과거(경험과 추억을 포함한)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과거의 가치를 모른다는 건, 현재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것과 같다. 시간이 흐르는 동시에 과거는 쌓여만 간다. 지금 이 타자를 치는 순간도 곧바로 과거가 된다.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후회만 가득하다면, 그때 그 시절의 현재를 밀도 있게 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밀도 있게 순간을 살아가자, (막을 수 없는) 흘러가는 시간 속 다가오는 이별 앞에 슬픔·후회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랑하고,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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