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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민 Aug 16. 2022

헤어졌다는 표현이 좋겠네요.

중독성 짙은 그리움에서 벗어나는 법

몰랐다. 그리움에도 중독성이 있을 줄이야.


요즘 들어 도통 잠을 못 자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밤에 자야 할 잠을 못 자고 있다. 여전히 낮잠 혹은 자야 하지 말아야 할 시간엔 잠이 쏟아진다. 그러나 밤만 되면 잠은 오지 않고 감성에 취해 생각만 자꾸 많아진다. (온몸을 지나가는 통증은 덤이다.)


잠이 오지 않는 시간에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정해져 있다. 종이로 된 매체를 보거나 디지털화된 매체를 보거나. 나는 보통 핸드폰을 켜는 편이다. 늘 그렇듯 가장 먼저 하는 건 유튜브 시청이다. 볼만한 게 다 떨어질 때쯤엔 '넷플릭스나 볼까' 하는 고민도 잠깐 한다. 하지만 언제나 마무리로 하는 행동은 사진첩 뒤적이기다.


신기하다. 어제 봤던 영상은 오늘 다시 안 볼지 언정 어제 봤던 사진은 오늘도 다시 한번 찾게 된다. 생동감 하나 없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사진이 뭐가 그리 좋은지는 몰라도 말이다. 아니, 사실 생각을 좀 해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게 생생하지 않은 사진은 그 덕분에 상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상상은 행복에도, 그리움에도 이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감정을 더욱 극대화시켜준다. 그 매력에 사진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영상에는 '그땐 그랬지'가 없다. 사진이 상상을 낳는다면, 영상은 사실을 낳는다. 그 예로 우리는 사진을 보며 '이때 너 무슨 일 있었는데, 무슨 일이었지?', '이때 엄청 웃겼던 것 같은데, 뭐 때문이었지?'라는 식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곤 한다. 반대로 영상을 보며 추측하는 일은 거의 없다. 영상에는 함께 나눈 대화 내용이나 함께 자리를 하고 있는 사람 심지어 감정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에도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사진에는 상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 건 매일 같이 그리움에 빠져 할아버지 사진을 들춰보는 나를 보고서였다.


여느 날과 같이 잠이 오지 않았고 나의 마지막 종착지는 사진첩이었다. 작은 네모 기계 안엔 많진 않지만 할아버지 사진이 몇몇 장 담겨 있었다. 졸업식 사진과 건배하는 사진, 감나무에서 감을 따는 사진 그리고 영정사진으로 사용한 큰아버지 결혼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까지.


그리고 상상했다. 아니, 자연스레 상상이 됐다. 할아버지께 못 해 드린 것과 할아버지와 함께해서 즐거웠던 것은 물론, 실제로 하지 못한 모든 일 모두 나의 상상의 대상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건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문제점도 있었다. 상상은 말 그대로 상상이란 점이다. 상상 속에 머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진 몰라도 하염없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매일같이 사진첩을 찾아봤나 보다.


보고 싶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죽음에 비해 한 없이 가벼운 표현일지는 몰라도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다 헤어진 기분 같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헤어진 사람쯤으로 생각하는 건 어떨까 싶기도 했다. 보고 싶은 거 똑같고 연락을 하지 못하는 상황 또한 비슷하니 오히려 헤어진 사람으로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와 헤어지고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헤어진 사람.


다행히도 경험상 연인과의 이별은 버틸만했으니, 어쩌면 나와 헤어진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적응이 될 것 같다. 사실 '포인트는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해야 그리움이란 중독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할아버지와 헤어진 거다.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우리 할아버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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