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민 Oct 18. 2022

잠깐 볼펜 좀 느끼다 가겠습니다.

매번 짜릿한 성수, 파이롯트 팝업 

언제 가든 성수에는 새로운 팝업스토어가 오픈해있다. 성수가 매번 짜릿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파이롯트 팝업에 다녀왔다.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사용해봤을 법한 브랜드라곤 하지만, 브랜드 명이나 상호명을 기억하며 물건을 경험하는 편은 아니라 솔직히 뭔진 모르겠다. 다른 리뷰글을 보면 모나미 정도라곤 한다.


팝업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최근 29cm · 롱블랙 · 와디즈 · 모나미 등등의 성수에 있는 오프라인 숍을 많이 방문했는데, 경험과 서비스 측면에서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이 아닐까 싶다.


볼펜 파는 곳에선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펜 하나하나 써보며 체험하는 것도 좋았고, 오피스 콘셉트에 몰입하며 서류를 작성하게 하도록 하는 콘텐츠도 좋았다. 밑에서도 이야기를 하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단순한 서류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좋았던 점은 상업적인 유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보통 오프라인 숍, 특히 팝업 공간에 가면 뭘 하지도 않았는데 입장하는 순간부터 회원가입이라던지 인스타그램 포스팅 · 태그 등등을 많이 요청한다.


물론, 파이롯트 팝업에서도 인스타그램 포스팅과 해시태그를 요청하는 팻말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알려준다. 작가님이 작성한 서류 파일 문구들, 어디에 상품과 이벤트가 숨어있는지(?), 이 공간은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등... 품격 있는 응대를 받다 보니 자연스레 공간에 흠뻑 빠지기도 했다.


[이제부턴 사진]

1. 오피스 형태로 잘 꾸며진 내부 공간 모습이다.


2. 빠질 수 없는 볼펜. 컴퓨터 파일 모양의 메모지에 글씨를 쓰고 지울 수 있다. 파이롯트에는 지울 수 있는 볼펜과 형광펜이 있다.


3. 숨겨진 공간이 있다. 워낙 이곳저곳 잘 둘러보는 나에게 보였던 작은 문. 위치가 아래이기도 하고 나름 구석진 곳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발견하는 스팟은 아닌 것 같았다. 저기를 찍고 있는 나를 보던 스태프 한 분이 '저거 열려요~' 한 마디를 내뱉고 가셨다.


문을 열어보니 작은 달력 선물이 있었다. 옆에서 스태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 공간을 발견하고 여는 사람이 정말 소수에 해당하는 것 같았다. (관찰의 힘, 뿌듯 포인트)


4. 위에서도 말했듯이 서류를 작성하는 체험 콘텐츠도 있었다. 당연히 글씨를 쓸 때 사용한 건 파이롯트 펜이었고, 각각의 페이지마다 '아크로볼 1.0' 같이 어떤 펜을 사용해야 할지 가이드를 해준다.


'아크로볼 1.0'은 한없이 부드러운 펜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볼펜의 질문은 '당신의 이름을 거꾸로 적어주세요.' 처음에는 그냥 아무 이유 없는 질문이구나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펜의 특성을 정말 잘 나타낸 질문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추측하건대 이름을 똑바로도 아닌 거꾸로 작성하게 한 이유는, 부드러운 필기감을 오랫동안 천천히 느끼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이름을 원래 순서대로 똑바로 쓰게 되면 빠르게 흘려 쓰는 경우도 있는데, 거꾸로 작성하다 보니 천천히 생각하면서 쓰게 됐다. 아마 이것을 노린 것은 아닐까?


5. 이번 볼펜은 프릭션 포인트 노크 04다. 이 볼펜의 가장 큰 매력은 볼펜 뒤 고무로 문지르면 글씨가 지워진다는 점이다. 연필과 다르게 볼펜은 지울 수가 없어서 한 번 실수를 하면 종이가 더러워지곤 했는데... 이젠 그럴 일도 없겠다.


이 볼펜의 질문은 '월급 얼마 받고 싶으세요?'다. 사람이 참 신기하게도 저런 질문을 들으면 살짝 망설여지다가도 행복 회로 풀가동 후에 말도 안 되는 높은 금액을 적게 된다. 그러다 약간의 생각 후에 현실 반영을 살짝 가미해서 상상 속의 월급을 살짝 낮추기도 한다. 저 질문은 아마 이런 심리를 이용하며 볼펜의 매력을 어필한 건 아닐까 싶다.


6. 이 볼펜은 하이테크씨 0.25다. 하이테크는 내가 학창 시절 때 비싼 것과 펜심이 얇은 걸로 유명했다. 아마 이 질문에서는 펜심이 정말 얇으며, 어느 공간에서든 정교한 글쓰기가 가능하다.라는 것을 어필한 것 같다.


질문에는 어떠한 영향력이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고생 정말 많이 하신 듯.


7. 마지막은 선물 뽑기 자판기? 다. 원래대로라면 저 노란색 원형 버튼을 돌려서 뽑기를 하는 것이었을 텐데, 고장 났다고 한다. 스태프 분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던지... 비록 온전하게 콘텐츠 경험을 전달받을 순 없었지만, 이 역시 얼마나 공간을 열정적으로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공간 경험과 질문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하루.

작가의 이전글 제주도 사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