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에 빠지다

무위자연의 진정한 의미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보려고 노력 중

by 이재무

반백년을 넘게 살면서 제법 많은 공부를 해왔다고 자부한다.

공부에 매진하게 된 이유는 상당히 어이없는 것인데, 평소 워낙 술을 좋아하다 보니 술의 양이 점점 늘어나는 내 모습을 보며 자칫 건강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내가 워낙 놀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이어서 놀기 시작하면 정말 미친 듯이 한참을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음주와 흡연에, 몇 날 며칠을 날을 새고 노는 것은 예사였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싯적처럼 놀아 제끼지는 못하겠지만 노는 쪽을 바라보면 분명히 부질없는데 시간을 낭비할 것이 뻔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곰곰이 생각하던 그때! '술 마시고 놀 시간에 무언가를 의무적으로 대체할 일이 생기면 술도 적게 마시고 놀기도 적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 것이다.

그래서 보통의 사람들이 레저나 여가생활을 즐길 때 나는 공부를 취미처럼 해왔다.


그 덕에 이후 내가 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를 원격 대학이나 대학원을 활용하여 부단히 해왔고, 덕분에 나의 학위는 박사 1개, 석사 3개, 학사 4개에 이르고 있다.

처음에는 건강 때문에 시작한 공부이지만 지금은 일상의 루틴처럼 되어서 이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상당히 허전하고 불안한 상황에 이르렀다 - 알코올 중독이 아닌 공부 중독에...


공부 많이 했으니 나 잘났다는 유세를 떨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취미처럼 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부문의 책이나 사상, 정보 등에 직면하게 되는데, 가장 최근 공부하게 된 곳에서 집중으로 학습했던 것이 #프레이리 와 #알린스키 라는 #급진주의자 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렸을 때 접했던 프레이리와 알린스키를 성인이 되어 심층적으로 공부해 보니 참으로 대단한 인물들이었다고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인간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음을 가난한 농부들 틈에서 평생 외쳐온 프레이리나 현장에서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뛰어야 한다고 주장한 알린스키나 정말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들이었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프레이리와 알린스키의 교육 사상을 접하고 충격적 신선함을 느끼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1인이 있었다. 이들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앞서 활동했던 사상가 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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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여러 초상화, 전해오는 바대로 매우 연로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대머리에 그리 미남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리 호상은 아니셨던 것 같다.


내가 공부한 프레이리와 알린스키는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의 생각과 겹쳐진다고 부지부식 간에 느껴졌는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보니 바로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이 그것이었다.

어떠한 틀에 생각과 배움의 한정하지 않은 무한한 길이의 진리를 탐구하는 길에 자기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달려가는 행동을 멈추지 말라는 노자의 사상과 급진주의자들의 사상은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대 때 멋으로 노자의 도덕경 공부를 한 뒤, 어려움에 책을 던져버리고 간간히 재도전을 했었지만 그다지 큰 성취를 얻지 못하였다. 그래서 공부를 제법 많이 오랫동안 해왔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노자에 대해서는 절대 일말의 아는 체도 하지 않았으며, 당연히 앞으로도 감히 아는 체를 할 생각도 없다.

주지하다시피 노자의 도덕경은 실제 다른 사상서들에 비해 분량이 상당히 적지만 그 간결한 문장들 속에 우주를 담고 있어 그 내용은 곱씹을수록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 - 도덕경의 일부 내용을 따라 해봤다.


노자의 사상은 억지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무위자연, 물과 같이 낮은 자세를 지향하고 항상 선함을 추종하라는 #상선약수,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권세와 재물을 탐하지 말라는 #공수신퇴 등으로 대표되는데, 노자의 말씀은 현대를 사는 나와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자신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 문명적이라고 자만하는 현대인들이지만 여전히 얼마나 많은 바람과 욕망에 스스로를 갉아먹고 스스로를 망가뜨리는가?

"聖人의 삶은 無知와 無欲와 연관되어 無爲를 실천하는데 이는 自然이라고 하는 神적 자아, 즉 玄에 의한 것이다." 노자의 말씀을 요약한 이 문장에는 일방적 강요나 복종이 얼마나 어리석고 욕구를 다스리는 것이 개인과 모두에게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를 함축적으로 말하고 있다.

사랑과 자비, 해탈 등 우리가 주류 종교라고 부르는 종교들의 이념들을 모두 포괄하는 사상을 그 종교의 창시자들보다 더 일찍이 깨닫고 설파하셨던 것이다. 그야말로 선각자 중에 선각자가 아닌가?


가장 썩었다고 평가받는 정치인들에게도 노자는 다변(多辯)을 삼가하고 스스로 고집을 피우지 않으며 국민들 편에 서서 그들의 눈높이와 마음에 맞도록 스스로 맞춰나가길 권하고 있다. 소박함과 유연성을 무장한 채 억지로 통제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마치 2500여년 전에 현재를 보고 말하는 것 같지 아니한가?


이제 5번째 도덕경 해석에 도전하는 내가 감히 노자에 대해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냥 심취해보고자 한다. 읽고 또 읽고, 또다시 읽어서 머릿속에 새겨놓고 남은 세월 동안 천천히 계속 되새겨보려고 한다. 그것이 나만의 무위라고 생각하기에 물과 같이 낮고 낮은 곳의 진리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노자에게 예를 묻는 공자! 공자는 노자를 용과 같은 사람으로 표현했다.
노자가 소나무 아래에 있는 평상에서 경(經)을 강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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