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시도를 중심으로
이 글은 특정 세력의 이익과 무관하며 순수하게 칼 폴라니에 준거한 학문적 관점에서 논하였음을 밝힌다.
그러므로 보수 혹은 진보라는 명목 하에 특정 정치 사상에 매몰된 사람들은 본 글을 보지 않기를 바란다.
칼 폴라니(Karl Paul Polanyi)에 따르면, ‘자기조정시장(self-regulating market)’은 인류 사회 초창기부터 유지되어오던 자급자족 가정경제 체제를 탈피하여 수없이 산재된 시장들에서 거래되는 막대한 상품들이 가격을 통해 상호 연결됨으로써 거대하지만 하나의 총체적 구성체를 이루고 있는 상태이다(홍기빈, 2019, 191). 자기조정시장에서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생산 과정을 통해 소득이 발생하는 인과관계가 발생하는데, 이때 판매의 범주에는 재화는 물론 노동과 토지, 화폐가 모두 포함되며, 각각에 부가된 가격은 임금, 지대, 이자로 불린다. 즉, 산업과 관련이 있다면 어떤 요소도 거래될 수 있으나 강제적 통제력을 가져 자기 이외의 방법이나 공간에서 형성되는 소득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자기조정시장인 것이다.
그런데 목적의식적으로 주지하고 있다시피 노동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그 자체이며, 토지는 사회가 존립하고 있는 자연환경 자체이다. 따라서 사회를 실체화하는데 불가결한 존재인 노동과 토지는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생산한다는 상품의 경험적 계설이 결코 적용될 수 없다. 노동이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고, 토지가 자연의 이명이기 때문에 상품이 될 수 없다면 화폐는 단순히 구매할 수 있음을 확인해주는 거래상 약속 수단에 불과할 뿐 새롭게 창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 허구이지만 자기조정시장은 이러한 상품의 허구를 바탕으로 존속되고 활성화된다. 또한 자기 이외의 시장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 속성을 갖고 있어 시장의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책이나 법안은 완강히 거부하며, 경제 영역 내 유일 권력으로써 시장의 자기조정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정책과 법안만 합당하다고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그래서 자기조정시장은 사회를 정치와 경제 두 영역으로 구분하는 소모적인 제도적 조치를 항상 요구한다. 이러한 연유로 만약 허구 상품을 용인하는 자기조정시장이 사회 체제를 지배하는 원리로 적용될 경우 사회는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 자명하다. 노동과 토지, 화폐는 경제를 움직이기 위한 필연적 요소임이 분명하지만 사회적 실체이기도 한 이들이 보호받지 못한 채 허구 상품을 선호하는 독선적 시장이라는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에 노출된다면 무참하게 갈려나가고 그로 인해 나타날 사회적 피폐함과 불건전한 경제 체제는 그 어떠한 사회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의 경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과 인간의 생명 자체를 포괄하여 지칭하는 다른 이름에 불과하기 때문에 상품화되어 자기조정시장의 부속물이 되어버리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귀결된다. 노동이 상품이 된다는 것은 노동을 하는 사람의 삶이 상품으로써 소유한 누군가의 의도대로 귀속됨을 상정하고, 존재 자체로 존엄함을 갖는 인간이 타의에 의해 조정되는 소유물로 전락하는 것은 인간 본질의 말살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김영진, 2004, 8-10). 이러한 부정적 견지에도 자기조정시장은 자기 명분에 의한 합리화가 용이하여 그 지배력을 빠르게 넓혀나갈 수 있는 속성으로 인해 확장세를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이 언젠가 인류 사회 모두가 자기조정시장의 흉포함에 지배되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를 더욱 키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자기조정시장이 전 세계를 점령하듯 파상적으로 세력을 펼쳐 나가는 가운데에서도 다른 한편에서 시장주의자들이 말하는 완전한 자기조정시장을 실현 불가능한 ‘망상적 유토피아(stark utopia)’라고 부정하며, 자기조정시장의 상품의 허구화를 제한하는 조치들의 연결망이 제도적으로 통합되는 활동이 나란히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폴라니가 ‘이중적 운동(double movement)’으로 명명한 이러한 움직임은 사회 저변에서 폭넓게 발생하여 자기조정시장의 독선적 통제에 따른 파괴적 영향에 격렬하게 저항하고, 허구 상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재난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사회의 자기보호운동(self-protection of society)’의 존재를 방증한다(칼 폴라니, 2009, 248).
본 연구가 분석대상으로 선정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의 영역에서 나타난 자기조정시장의 허구 상품화에 대항하여 창출된 자기보호운동의 일환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 등의 조치를 소홀히 함으로써 발생한 중대한 산업 및 시민 재해로 인해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률이다. 기업이 안전 및 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안전에 투자를 증대함으로써 중대한 산업 재해를 예방하고 기업 종사자들의 안위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즉, 노동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그에 대한 저항을 묵살하려는 자기조정시장의 시도를 분쇄하고 노동자들의 안전을 최우선하여 노동의 신성함을 지키는 자기보호운동의 수단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자기조정시장과 그에 대치하는 자기보호운동이 나타난다는 폴라니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주목해야할 부분은 이후의 양상이다. 노동의 상품화에 치중하는 자기조정시장의 원리에 따라 존엄한 인간의 생명을 저해하는 행위가 만연하자 사회가 그에 대응하여 자기보호운동의 결과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다면 자기조정시장은 노정되거나 다른 형태의 상품 허구화–자기조정시장은 반성하지 않고 독선적 시장 탐식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로 전환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2022년 새로운 정부의 수장으로 선출된 윤석열 대통령은 기존의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법이기 때문에 2024년까지 반드시 개정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이중 운동을 통해 나타난 사회의 자기보호 기제가 새로운 정권 창출과 함께 다시 자기조정시장에게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것이다. 즉, 폴라니의 관점에서 지목되지 않은 자기보호운동의 핵심 주역인 국가가 자기조정시장과 결탁하는 반동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의도한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개정된다면 다시 자기조정시장이 지향하는 노동의 상품화가 심화될 것이고, 사회 공동체의 모습은 법 제정 이전의 모습으로 회귀할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이에 본 연구는 중대재해처벌법을 해체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를 자기조정시장과 국가의 결합 사례로 선정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가진 사회적 의미와 그와 관련하여 생성된 사회적 담론을 고찰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이 개정된 이후 나타난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폴라니 관점에서 비판하고, 우리가 대응해야할 행동을 제언하고자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에도 격화되는 논란과 사회적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불에 기름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 이전 벌어진 2022년 3월 2일 대선후보 초청 TV 토론회에서 “중대재해법도 범죄가 성립하기 위한 구성요건이 애매하게 돼있기 때문에 이걸로 형사 기소를 했을 때 여러 가지 법적 문제가 나올 수 있다.”며 중대재해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2022년 3월 21일 경제단체 주요 인사들과 만나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겠다고 직접 밝히기까지 했다. 이에 대대적인 반격의 기반을 얻었다고 판단한 경영계는 직업병 인정 기준을 축소하고, 적합한 책임자가 선임되면 사업대표자는 의무이행 책임을 면제하는 경영책임자 대상과 범위 축소, 도급·용역의 범위를 축소하는 등 시행령 개정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범위를 축소하자는 내용의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하며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을 요청하였다(『오마이뉴스』, 2022년 6월 21일). 거기에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더불어민주당이 만드는데 어쩔 수 없이 동참한 법안이라고 변명하며 법안의 명확성이나 구체성, 완결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완·수정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거들고 나섰다(『서울경제』, 2022년 6월 17일). 당연히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앞장섰던 야당과 노동계는 국민 목숨을 담보로 한 충성 경쟁을 중단하라며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산업재해를 막고 감소시키기 위해 정치권과 노사정은 중대재해처벌법 재개정이라는 개악을 논의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정부는 엄정한 수사와 대폭적 지원, 국회는 후퇴한 조문 회복 개정 작업, 노사는 실질적 참여와 안전보건투자 등 각자의 노력을 경주할 때라는 이유에서였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22년 11월 14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찾아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공식 입장을 견지하였다. 민주노총도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 왔던 태도를 뒤집어 노동자들을 기만했다고 비난하며 2022년 11월 22일 윤석열 정권의 노동 탄압과 폭주를 심판하자며 총파업을 선포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면, 국가가 먼저 손을 내밀고 자기조정시장이 화답하면서 상호 결합하려는 시도가 나타난 것이며 이는 선한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 나아가는 이중적 운동의 순리에 역행하는 파행으로 규정할 수 있다. 폴라니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행위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기 이전까지 우리 사회 내 산업 현장의 현실은 상기 기술한 바와 같이 악마의 맷돌이 열렬히 작동하여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그것도 초고열의 전기로에 빠져서, 숨이 막혀서, 유독가스에 녹아내려서, 열차에 깔려서, 공포영화에서조차 사용하지 않을 잔인하고 무참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이 죽어갔다. 그런데 그에 대한 처분은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맡은 담당자의 구속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죽은 노동자의 과실로 치부해버리거나 단순한 변사로 처리해버렸다. 노동의 허구 상품화라는 이론적 관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천부적 인권과 노동자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인간 사회에서 있을 수 없다. 또한 폴라니는 인간의 운명을 시장에 내맡기는 것 자체가 파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회적 개입이 당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기술하였다(칼 폴라니, 2009, 379).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의 허구 상품화를 지향하는 자기조정시장이 움직이는 악마의 맷돌을 멈추고, 인간 사회의 파멸을 막기 위해 사회가 개입하여 만들어낸 자기보호운동의 산출물이다. 심지어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조차 자기조정시장에 대한 완전한 대응책이 아니며 더욱 강화되어야 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런데 국가를 위임받아 관리하는 정치권에서 이러한 잘못된 결탁이 선제적으로 시도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사회를 파멸로 이끌겠다는 의지의 천명과 다를 바 없다. 자기조정시장은 국가의 개입이 이루어져 상품의 가격을 조정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칼 폴라니, 2015, 30). 개입이 자신들의 본질을 훼손시키고 기능을 저해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자기의 선호에 맞추려는 모략의 대상으로만 국가를 대한다. 반면에 인간이 누려야하는 생명의 보호라는 가장 기초적인 권리는 국가가 최우선해야할 의무이며 인도주의적 간섭은 인권 보호를 위한 차원에서 가능하지만 어떠한 경제 체제의 패러다임도 그 보다 우선할 수 없다(김기호, 1998, 224).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기능을 대리하는 정부는 자기조정시장의 독선적 접근을 경계하고 사회의 자기보호운동 사이에서 중립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도적이고 선제적으로 자기조정시장에 접근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의 개정을 시도하는 행위는 국가가 필수적으로 이행해야하는 의무의 차원에서도 심각한 위배이자 정상적인 국가 체계적 모습이라고 볼 수 없다.
둘째, 국가와 자기조정시장이 결탁을 통해 자기보호운동의 결과를 전복시키려는 작금의 시도는 폴라니가 지적했던 비대해진 권력을 가진 국가가 보여줄 수 있는 문제가 여실히 나타난 것이다. 폴라니는 ‘큰 수의 사회(society of large numbers)’가 되어버린 현실을 인정했지만 국가의 중앙 권력이 강해지면 관료제가 성장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상황이 많아질 수밖에 없음을 경계하였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 거버넌스를 지향하였다(임상헌, 2022, 116).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그 어느 정부조직보다 강력한 관료제에 기반을 둔 검찰총장 출신으로 폴라니가 우려하는 불필요하게 강대해진 국가 권력의 남용을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누려본 인물이다. 즉, 폴라니가 말하는 거버넌스에 의해 타파되어야 할 관료적 병폐의 수혜자로서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국가 권력의 위임자로서 거버넌스에 전념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사람 중 하나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자기조정시장과의 결합 시도를 보수성을 근거로 당위적 실천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는 반동적 자유주의(reactionary liberalism) 전략을 채택하여 시혜국가에 대한 도피를 유도함으로써 현재 존재 가치를 만들고 있을 뿐 원론적 보수로서의 근간이나 원칙을 가지고 존속하고 있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정치적 논리에 의해 도덕주의와 시혜주의의 유혹에 빠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윤지환, 2022, 142-143). 게다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이 반영되어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최근의 보수주의는 미국에서조차 과도한 국가 개입과 무분별한 복지의 지양의 대원칙이 준수된다면 현실적인 지역사회 중심의 복지의존과 인도주의적 사회정책의 유지를 일정 범위 내에서 수용하고 있다(Mead, 1986, 4).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자기보호운동 결과에 대한 도전은 보수정부라는 명분으로 갈음하기에는 부적절하고, 오히려 어설픈 행정 만능주의적 사고를 가진 정부의 부족한 정치적, 행정적 역량에 기인한 명분 없는 패악에 가깝다.
셋째, 일반적인 세간의 인식과 달리 폴라니는 자유라는 가치를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주의의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유기체주의를 넘어서는 제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적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강조하였다(지주형, 2017, 280). 또한 이러한 폴라니의 자유에 대한 인식은 지불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자신이 선택한 사회적 생산 활동을 추구할 자유 등 노동의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로 진전해 생각할 수 있다(임의영, 2013, 23). 따라서 인간의 자유는 다른 사람을 착취하거나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사익지향적 시장에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합리적으로 벗어날 때 비로소 달성되는 것이다(진희선·송재룡, 2013, 292). 이미 앞서 확인한 것처럼 중대재해처벌법은 독점적 이익을 영위해온 경영자 측의 권력을 통제하는 기능을 하고, 노동을 허구 상품화하려는 시장을 제어하는 법안이다. 그러므로 폴라니가 주장한 자유라는 관점을 준거로 보면, 국가를 대신하는 윤석열 정부가 원초적 노동의 상품화를 지향하고 국가 규제가 사라진 시장경제에서 횡행하는 자유만 추구하는 자기조정시장과 모의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는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웠을 뿐 내실은 자유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비행에 불과하다.
폴라니의 사상이 담긴 저서들을 보면 그는 자기조정시장의 흉포함을 경계하면서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대항적으로 나타나 잘못된 시장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국가가 자기조정시장과 결탁하여 순리를 역행하고 파괴할 것이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경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폴라니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국가의 대리인으로서 자기조정시장과 결탁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는 전례 없는 우패한 작태로 간주된다. 본 연구에서도 폴라니의 관점을 기준하여 중대재해처벌법이 무도한 자기조정시장에 대항해 나타난 사회적 자기보호 기제임을 확인하였고, 국가가 자기조정시장과 결탁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위협하고 사회를 파멸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점, 국가의 필수적 의무에 대한 위배라는 점, 비대해진 국가 권력에 의해 나타난 반 민주주의적 행태라는 점,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이처럼 기업 활동이 위축되니 노동의 상품화를 존속시켜달라는 자기조정시장과 그에 화답하여 사회의 자기보호운동 성과물을 훼손하겠다는 국가 권력의 부정적 연합이 자행하려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소외와 억압을 구조화하는 모략에 강하게 대처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하여 경주되어야 할 정치 활동은 명확하게 규정된다. 국가와 자기조정시장 모두를 억제하는 방법에 관하여 폴라니가 조언한 바를 실천하는 것이다. 먼저 폴라니는 시장경제의 폭압에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시장경제로부터 호혜적이고 자조적인 공동체를 지키고 유지시킴으로써 통제 기제의 기능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임상헌, 2022, 116). 공동체는 개개인 각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면서 자유를 누리던 사회 형태로 자기조정시장의 사회 잠식이 일어나기 전까지 상호호혜 방식의 삶이 존재하던 공간이다(원용찬, 2019, 18-19). 이어 폴라니는 공동체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통제 기제로써 계급정치를 통해 국가 권력을 장악하여 시장경제를 제어하는 방식을 꼽았다. 사회의 어느 개인이나 조직보다 막강한 자원과 힘을 갖고 있는 국가이기에 계급들 사이의 타협과 합의가 근간이 된 민주 정치적 이념에 의해 구동되어야만 진실로 자유를 지키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임상헌, 2022, 117-119). 이중에서 2023년의 대한민국이 공동체의 원래 모습으로 즉시 회귀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 계급들의 신뢰와 협력, 연대가 근간이 된 정치 활동이 국가를 주도하고 자기조정시장을 엄격하게 규율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다시 말해, 영국의 노동당이 그러했듯 정치시민으로 전환하여 계급정치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행보에 제동을 걸어야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에 대한 계급정치가 간단하고 조속하게 성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집권 1년차 야당을 비롯하여 같은 여당 소속의 유승민 의원조차 윤석열 대통령의 자세를 오만과 독선, 불통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이투데이』, 2023년 4월 14일). 하지만 현재 윤석열 정부가 자기조정시장과 결탁하려는 주체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이 없다면 악마의 맷돌은 다시 가열 차게 작동할 것이며 더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될 것이다. 다만 계급정치를 실행하는 정치시민으로서 당면한 국가의 자기조정시장과의 결탁을 봉쇄하려는 조치와 함께 다음과 같은 보다 근원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천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는 가장 근원적 원인인 위험의 외주화와 개별화를 통한 착취의 구도를 타파해야 한다. 상기 기술한 사례에서 보았듯 민간 기업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대부분이 하청노동자, 협력업체 직원 등의 이름이 붙은 채 비참하게 죽어갔다.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용역이나 파견, 민간위탁, 사내하청 등으로 명명되며 간접 고용의 구조 속에서 근로에 종사한 사람들의 부상 정도는 원청의 정규직보다 2배가 넘지만 산재보험 처리비율은 1/2에 불과하여(국가인권위원회, 2019, 65) 외주화로 인한 위험이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전력공사에서 지난 5년간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중 거의 대부분이 하청업체 소속(『오마이뉴스』, 2022.01.07)인 점을 감안하면 공공부문도 별 차이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적 현상은 한국 사회가 하청과 비정규이라는 명목 하에 정례적이지 못한 노동자들의 안전과 목숨보다 권력을 지닌 자본가의 입장을 더 중요하게 인식하는 압도적 시장 우선 사회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 큰 문제인 것은 상황이 이러함에도 최소한의 조치와 안전 장비 제공조차 비용절감의 명목으로 원활하게 시행되고 있지 않으며,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공공과 민간 부문의 모든 기업들이 산재 사망의 원인을 노동자의 과실로 매도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위험의 외주화와 개별화에 따른 사고 책임의 회피 등 경제 권력의 작태가 더욱 뻔뻔스러워지고 있어 정치시민들의 가장 시급한 대응이 고려되어야 한다.
산업재해 영역에 관한 정의가 심도 있게 논의되어 새롭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로 규정될 수 있는 개념화의 인정과 판단 기준, 범위 등이 차별과 배제에 근간하는 정치 논리로 점철되어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산업재해에 관한 정의는 전형적인 남성 위주의 구조화가 실현되어 있어 물리적으로 상이한 남녀의 차이가 구분되지 않고 직업안전보건의 범위가 대부분 남성노동자의 병리 상태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남성노동자들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노동 환경에서 행하고, 노동 현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건강문제에 대한 명확한 진단 정의가 미비하다는 이유 등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직무수행으로 입은 부상임에도 사업장이 산재보험에 가입되어있지 않거나 산재보험에 가입되어있으나 노동자의 짧은 근무경력으로 인해 재해를 인정받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실제로 존재한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이러한 측면의 완성도가 높지 못하다. 법률과 시행령을 통해 산업재해의 영역을 규정하고 있지만 재해의 다양성에 비하면 구체화되지 못하여 인위적 해석과 적용이 이루어질 여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신성한 노동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노동에 임하고 건강한 상태로 생명 존중이라는 기본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산업재해에 대한 보다 세밀하고 광범위한 재정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폴라니의 사상을 기반으로 자유경쟁 시장의 잔혹한 착취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동이 갖는 고귀함을 체감할 수 있도록 노동의 허구 상품화를 분쇄하는 방향으로 노동이 정의되어 인간의 권리 자체로서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매우 단순하고 원초적인 우답이 될 수 있겠지만 폴라니의 사상을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려는 국가와 자기조정시장의 불순한 연합, 산업재해의 저변에 깔려있는 우리 산업사회의 병폐 등이 개선되려면 극도의 인내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 시민사회로 변모한 것은 군사 쿠데타의 주역인 노태우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부터이다. 이후 급격하게 성장해왔다고 하지만 한국 시민사회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이제 고작 사춘기에 접어든 시기로 비유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성인처럼 보이지만 매사 불안하고 격정적인 혼란의 어린 시기 말이다. 본 연구가 분석 대상으로 잡은 부정적 결탁 현상도 우리 사회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조급한 마음보다는 정치시민으로서 계급정치를 통해 국가의 책임을 부단히 상기시키고 노동자 모두의 안전과 건강, 생명의 보호를 끈질기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