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이냐 일탈이냐

성스럽고 발칙한, 그렇게 존속해 살아가는

by 이재무

성숙한 이는 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성숙하지 않은 이는 수시로 일탈을 생각한다.

일탈하는 이는 자유롭고 보편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일탈을 선호하지 않는 이는 완고한 사람이다.


성숙과 일탈,

두 단어는 얼핏 보면 서로 상당히 무관해 보이지만 깊은 연관성을 보이고,

상호 영향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막상 따져보면 상호 간에 일련의 과정이 유려하게 연계되지는 않는다.

연결되어 있는 듯 하지만 막상 따라가다 보면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듯 느껴지는 관계인 것이다.


성숙과 일탈의 관계는 이런 모습?


내 개인적인 가치관과는 맞지 않지만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성숙하고 싶어 한다.

연배가 어린 사람들은 어른으로 대접받기 위해 성숙하기를 바라고, 나이가 찬 사람들은 자신이 존경받기 위해 성숙하기를 바란다. 혼인과 출산을 위해서거나 강한 물리력을 획득하고자 신체적으로 성숙하기 원하며, 동물과 차별되는 인간으로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정신적으로 성숙하기를 원한다.


사람들의 취향이 그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성숙을 지향하며 온갖 좋은 말들을 다 가져다 붙이고는 '이러이러한 사람은 성숙한 것이다! 닮아야 한다!'라고 엉뚱한 강요를 하기에 이르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좀 이상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다들 숙성되려고만 할까?

묵은 김치가 맛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바로 무친 겉절이도 그에 버금갈 만큼 맛있지 아니한가?

그런데도 왜 굳이 성숙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일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좋은 말이라고 소개되는 말 중에도 '성숙함'을 소재로 한 말들이 상당히 많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도 수용하고 인연을 소중히 한다.
혼자 묵묵히 고난과 불행을 이겨내고 교훈을 얻으려고 한다.
좋고 싫음보다 옳고 그름의 선택을 중시하고, 미래를 지향하며, 평범하고 작은 범사에서 많이 배운다.
함께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고 세상의 변화에 도전하고 웃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등등


아! 정말 좋은 말처럼 들린다.

비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 타당성도 충분히 있는 말들이다.

그런데 무작정 좋게 보려고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만약 내가 아래의 말과 같이 저 말들에 대해 반박한다면 어떻게 생각이 들겠는가?


다들 경험해 봤다시피 뜻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 뭔가를 해도 잘 안되기 일쑤이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반드시 그래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왜 굳이 시너지를 망가뜨리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까지 수용해야 하는가?

그리고 인연은 소중하다. 그렇지만 그 인연이라는 것은 나 혼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인연은 상대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만 소중이 여긴다고 해서 좋은 인연이 맺어지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인연이 시작되고 내가 아무리 잘 유지하고자 해도 상대가 변심한다면 그 인연은 끝나버린다. 변덕까지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당위성은 없다.


고난이나 불행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어렵다. 왜 그 힘든 것을 혼자 묵묵히 이겨내야 하는가? 그럴 때 도움도 받고 격려도 받으려고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 아닌가? 차라리 힘들다고 솔직히 외치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더 빠르고 쉽게 고행을 이겨내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옳고 그름의 진정한 선택을 위해서는 자신만의 좋고 싫음의 기준이 분명하게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는 말인가? 100명을 살리기 위해 10명을 죽이는 것은 옳은가? 그른가?

과거를 되새김으로써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평범하고 작은 범사에서 배우는 것은 작은 것뿐이다. 원효대사가 심심산중에서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것이 작은 일 같은가? 매우 드물고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특별하다고 이름 붙여진 것들은 그 본연의 뜻 그대로 특별하다. 따라서 거기서 배우는 것이 범사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크고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요즘 세상은 어차피 세상이 나에게 부단한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성숙의 정도와 무관하게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웃는다고 어떠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과도 없고 무능력한 상태에서 자주 웃으면 더 한심해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가? 내 반박이 궤변에 불과해 보이는가?


내가 더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성숙하라고 요구하면서도 미성숙한 마음을 함께 가지라는 모순적 요구도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요새 SNS에 많이 돌아다니는 '명언'이라는 문장인데, "내가 힘들 때 누가 내 옆에서 지켜봐 줬고, 잘되었을 때 누가 기뻐했는지 기억하라! 그리고 어떤 이가 내가 힘들 때 떠났고, 내가 불행할 때 기뻐했는지 기억하라!"라는 내용이다.

살면서 명심해야 하는 조언이라고 하면서 두 번째 소절에 들어서는 복수심을 가질 것을 암시한다.

상대의 미흡함에 보복하라는 조언이 과연 성숙한 것인가?


아니 그건 내가 꼭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닌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성숙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뭐~ 나만큼은 아니지만 아마 보통의 사람들도 성숙을 강요하는 세상살이에 엔간히 진력이 난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 행하지 못할 뿐 자신들이 평소에 경계하는 일탈을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꿈꾸기 때문이다. 고단해서, 상처받아서, 외로워서, 잊기 위해서, 그냥...

뭐가 이 유이 든 간에 일탈을 꿈꾸는 것은 인간의 '자유적 본능'이다.

여기서 말하는 일탈은 단어의 원 뜻처럼 일상을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비행이나 범죄행위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일상을 벗어난다는 아주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된다.


그러나 당신이 일탈을 꿈꾼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당신이 아직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음을 반증하며, 후속되어야 하는 회복의 의지도 있음을 말해준다.

즉, 일탈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일탈로 여유를 찾아야 할 정도로 진짜 몰린 상태는 아니라는 말이다.

진짜 곧 죽을 수도 있는 극도의 우울함에 시달리거나 최악의 상태로 피할 곳 하나 없는 구석에 몰려 있는 사람은 일탈을 꿈꿀 여유조차 없다. 숨 쉬기 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일탈을 꿈꾼다니, 그런 상태가 되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일탈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상황을 벗어나 목숨을 존속할 궁리밖에 할 수 없다.

일탈을 꿈꿀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당신은 자유로운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마음에서 일탈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고 그에 관한 욕구가 솟아날 때, 반드시 일탈을 시도하고 달성하기를 바란다. 꼭 말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뒤로 미룬 것에 대한 대가가 곧 엄청난 후회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다가올 것이다.

괜한 인내와 핑계 따위를 내세워 자신이 암담한 미래를 받아들이길 자처한 것을 변명하지 말아라.

인생은 짧다.

게다가 어쩌면 당신이 일탈하지 않음으로 해서 오히려 더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일탈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할 만큼 몰리게 되면 당신은 좌절하고 자신을 불행하다고 느껴 극단적으로 자학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을 막는 것이 일탈이다.


가자! 더 큰 자유를 찾아!


혹시 불륜과 같은 일탈도 적극적으로 하라는 말이냐고 멍청하게 되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불륜을 내 삶에 활력소를 제공하는 일탈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부부 관계를 최대한 빨리 청산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즉, 기존의 부부 관계를 청산한 뒤 새 인연을 기쁘게 맞이하라는 것이다. 오히려 나의 권유가 어긋나 버린 그릇된 기존 부부관계를 일상으로 놓고 보면 이 전반의 과정이 일탈이 되는 것이고 이 일탈은 합리적이면서 순리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상대에게 주는 상처 따위는 고민하지 마라. 이미 당신이 불륜을 마음먹었을 때 그 사람과의 인연은 종말로 치닫는 빌미가 만들어진 것이고 인연이 끝난 것이다.

한번 깨진 접시는 갖다 버리는 것이지 접착제로 붙여 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깨진 접시는 갖다 버리는 것이지 접착제로 붙여 쓰는 것이 아니다. 더 약한 충격에 다시 부서지게 되고 그로 인해 다치는 사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사자.jpg 자존감 vs 자존심

성숙과 일탈을 이야기할 때 제법 빈번하게 연관되는 말이 하나 있는데 꼭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당신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바로 '자존심'이라는 말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성숙함과 일탈을 이야기를 해보면 의외로 자존심이라는 단어가 종종 거론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아"라든지 "젊은 부장 때문에 자존심 상해서 내가 회사를 떠나야 할 것 같아"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 자존심이라는 말은 특히 무엇인가로 인해 원하지 않는 상처를 받거나 다른 이에게서 모멸감을 느낄 때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 때문인지 자존심은 내게 무척 소중하고 중요한 마음이라고 생각이 든다.

실제 각종 포털을 검색해 보면, 다른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높은 품격을 지키며, 긍정적 자기 평가에 기반을 두는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자존심이라는 말은 학술적으로 보면 '자존감'과 자존심을 뒤섞어놓은 개념이다. 한 글자 차이라서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존감과 자존심은 정말 완전히 천양지차의 개념이다.


자존감은 나를 중심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믿으며 나를 더 굳건하게 만들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반면에 자존심은 다른 사람의 시각을 중시하여 다른 사람의 기준에 내가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응하는 일종의 이기심과 열등감의 발로이다.


그래서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오히려 순수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가 필요한 영역의 차이라면 차이를 줄이고자 자기를 성찰하고 계발한다. 나에게 필요 없는 영역이라면 다른 사람의 뛰어남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존경을 표한다.

또한 현재 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미래의 조금 더 나은 나를 기대하며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당연히 역경을 이겨내는 힘도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좌고우면 하지 않는다.

자기에게 긍지를 갖고 있는 만큼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주변 사람들도 소중히 여기고 그들과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그렇지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선호에 맞추려고 시류에 편승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일도 하게 된다.

함께 다른 사람의 우월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더 낫다는 근거 없는 자만심을 표출하며, 미래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

겉으로 보이는 가시적 화려함을 선호하지만 자기혐오가 강하고 회복탄력성이 낮다. 그래서 타인의 부질없는 유혹에도 잘 넘어가고 불안정한 정서를 보이며, 이러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웃음이나 행복을 느낄 여지가 없다.


자존감은 성취욕을 만들어내지만 자존심은 승부욕을 만들어낸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높은 성취욕을 바탕으로 누군가가 내 경쟁상대가 아니라 내가 나아가야 할 모든 고난과 역경이 경쟁상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목표의 끝이 없다.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열어놓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하위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며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비교 대상을 설정하여 특정한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보니 인간관계 속에서 부작용이 표출될 수도 있고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허무함이 남는다.

자신의 성장가능성 때문에 도전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가 정말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보장도 없고 그럴 경우 그를 이기기 위해 노력한 것이 내게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자존심 상한다는 말을 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자존심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는 근거 없는 우월감이 당신에게는 존재하는 것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내가 더 말을 붙여봐야 무의미할 것이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되어 높은 성취욕으로 당신의 앞날을 화려하게 만들어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나만 잘났다는 마음으로 살으라는 말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가치를 신경 쓰기 이전에 당신의 가치와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라는 말이다.

본인이 본인을 모르고 사랑하지 않는데 어느 누가 당신을 알고 사랑하겠는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긍지를 가져라! 만약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그것이 자존감이 강한 사람의 태도이다.


앞서도 잠깐 말했지만 자존심을 자존감과 명확하기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다 보니 성숙과 일탈의 연계에서도 약간의 혼란이 나타난다. 하지만 개념 정리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에 적용하는 것이다.

즉, 일탈처럼 느껴지는 행동이더라도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 하면 그것이 큰 혁신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고, 성숙해 보이는 행동이더라도 자존심만 센 사람이 하면 언젠가 그 허상이 벗겨지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말했어도 자존심과 자존감 중 무엇을 배양할지 부지부식 간에 선택하는 것도 당신의 몫이다.




성숙과 일탈의 룰렛에서 무엇을 고를지는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있다.

성숙한 사람이 되어 견고하고 올바르게 기능하는 것도 매력적이고, 일탈을 통해 여유를 찾고 자신을 중시하며 사는 것도 매력적이다. 아울러 지금은 성숙하고 싶어 해도 언젠간 일탈을 택할 때가 있을 것이며, 일탈에 빠졌던 사람도 성숙을 향해 다시 도약하는 계기가 나타날 것이다.

성숙과 일탈, 이는 옳고 그름의 선택이 아니라 필요와 불필요의 선순환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때그때 당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하여 가장 맛있는 선택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체하지 말고 말이다.


빨간색이 성숙~ 검은색이 일탈~ 아니라고? 그럼 빨간색이 일탈~ 검은색이 성숙~ 아니라고? 에이~ 그냥 아무거나!


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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