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하실까요?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만 자랑도 아니다!

by 이재무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학 입시에 학을 떼서 그런지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공부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공부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회사에서 승진을 위해, 이직을 위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선거출마용 학력을 만들기 위해 등등 자신의 필요나 외부적 강요에 의해 목적지향적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독서를 공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포괄적으로 보자면 독서라는 행위도 공부의 성격을 갖고 있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읽어도 근거도 미약한 자기 계발서 따위를 읽는 것은 공부라기보다는 진정한 공부를 방해하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가 한 말이 당신의 자유로운 사고를 억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부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부는 자기 수양이다.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내가 진정 지혜롭지 못함을 알고, 진정한 지혜를 위해 나를 갈고닦는 과정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대로 무지의 지,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공부를 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흔히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고, 정보를 지식으로 착각하는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정보를 많이 갖고 있을 수는 있겠으나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니다. 정보를 많이 축적하고 있는 사람은 그냥 정보수집꾼이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과거에는 정보를 저장하고 휴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 가장 비용이나 전략 측면에서 유용했다. 그래서 암기력이 뛰어나 많이 외우고 다니는 사람들이 똑똑해 보였고 지혜로워 보였다.

그러나 요즘같이 실시간으로 정보를 조회할 수 있는 시대에는 정보를 찾는 방법만 알면 되지 굳이 그걸 머릿속에 다 넣고 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기억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현장에서 정보를 찾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일상에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하여 빠르게 단편적 정보를 찾고 즉시적으로 소비와 효용의 획득을 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 모두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으니 모두 지혜로운 사람인 것일까?

누구도 그렇다고 선뜻 답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도 은연중에 '공부와 지혜'가 '암기와 정보수집'과는 상이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들었을까?


다시 말하지만 공부는 자기 수양이다.

수양의 과정 속에서 부가적으로 지식이 축적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일 뿐, 자기 스스로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며, 뭘 제대로 알고 뭘 잘못 알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주가 되는 활동인 것이다. 그리고 공부는 내가 무엇을 채워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정해준다. 그래서 공부는 평생 해야 하며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하는 공부가 제대로 하는 공부일까?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관심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앞서 내가 한 말들이 마치 책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듯 보였을지 모르겠다.

명확하게 말하지만 책이나 인터넷으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접하고 아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지식체계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공부에 범주에 포함되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다만 내가 경계한 것은 정보를 배우고 상식을 익히는 자체를 공부로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가 유명한 셰프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그 레시피를 모두 안다고 해서 요리의 대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지식체계를 효용을 위해 빌어다 쓴 것은 공부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

단편적인 습득만이 아니라 고찰과 이해, 나에 대한 선별적 적용의 관점에서 체계적이고 심화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공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취득하고 그 정보들을 갈고닦아 나만의 체계로 편승시키는 과정은 더디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부는 관심과 시간의 투자가 많이 필요한 것이다.


공부를 위해 행하는 도구나 수단들을 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보는 것'보다 '읽는 것'을 추천한다. 책이나 지면을 통해 내용을 읽는 것과 각종 스크리밍 서비스 플랫폼이나 SNS에서 내용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이기 때문이다.

둘 다 똑같이 눈을 사용하는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는데, 읽는 것과 보는 것은 사용하게 되는 뇌의 부위부터 완전히 다르다. 뇌가 두 행위에 대해 가치 있게 여기는 인식 수준 자체가 달라 효과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 보는 것은 일상적이고 빈번한 행위로 인식하여 뇌가 제한적이고 심도 있게 구동하지 않지만 읽는 것은 특별한 행동으로 인식하면서 보다 심층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읽는 것이 보는 것보다 훨씬 깊이 있는 정보처리 과정을 거치게 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학습 효과도 훨씬 높아진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잡아먹어 종이책은 멸종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했던 IT전문가들의 예상이 보란 듯이 깨진 것을 봐라! 경험적으로 사람들은 보는 것과 읽은 것의 차이를 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보는 것에 읽는 것을 적절한 수준으로 혼용하면 훨씬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니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터넷에서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지식 체계를 구축할 수 없는 것이다.


보는 것에 매진하는 현상은 이놈의 정보통신기술과 퍼스널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고도화됨에 따라 더욱 심각해졌는데, 공부와 멀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고?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정보를 얻고 매일매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삶에 유용한 결과를 얻고 있다고? 그렇게 효과가 없다면 인터넷 강의는 왜 이루어지고 그를 통해 효과를 얻은 사람은 뭐냐고?

다시 말하지만 보는 것이 완전히 무용하다가 아니라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때 실효성이 낮다는 말이다. 인터넷 강의는 이런저런 조건으로 불가피한 상황적 이유로 하는 것이다. 인터넷 강의는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전달되는 효과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조건에 불과하다.

강사들도 효과성 측면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강의하는 것을 분명히 선호할 것이다. 만약 인터넷 강의가 대면하여 진행하는 강의보다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강사는 역량이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다시 말하지만 보는 것보다 읽는 것이 공부에는 훨씬 효과적이다. 기왕이면 손으로 써가면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손을 함께 움직일 때 뇌의 활성화가 더 잘된다는 것이 연구의 설명이다.


읽으면서 쓰는... 이 자세가 공부의 정석!


다들 알다시피 인터넷 세상이 되면서 각종 정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상황이 되었다.

정말 무지막지한 양의 정보가 매일같이 쏟아져 내린다. 새로운 것들도 있고 반복되는 것들도 있다. 하여튼 엄청난 양의 정보가 우리에게 밀려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용력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이 자료나 정보의 깊이 있는 해석을 포기하고 속단하며 신중한 판단을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로 인해 말도 안 되는 엉터리 기사를 머리말만 보고 믿어버리거나 특정 의도를 지닌 스트리머들의 감언이설에 혹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부가 부족하여 자신만의 신념체계가 투철하지 않은 것에 기인한다.

당신이 바다만큼 정보와 지식을 모은다고 해도 판단 과정으로 가치가 부여되지 않으면 그냥 자료의 난장판에 불과하고, 당신만의 논리체계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판단을 하더라도 타당성 측면에서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일련의 정리와 체계화 과정을 거쳐 나만의 논리로 구축되지 않으면 적시적소에 충분히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읽음으로써 뇌를 활성화시켰다면 나를 준거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체득하고 논리화하는 생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즉, 수많은 정보와 지식체계 속에서 나에게 유용한 논리를 만들어내어 나의 부족한 점을 자각하고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논리체계를 구축하는 생각을 충분히 하라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많은 오류를 범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빠서, 처리할 것이 많아서 시간이 없기도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이행하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있는 남의 지식체계로 내가 충분히 지혜롭다고 자만하기 때문에 오류는 자명한 인과율인 것이다.

무조건 많은 생각이 좋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위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정리를 할 수 있고 내가 무장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먹고사는데 별 필요도 없고, 지장도 없는데 굳이 뭐 하러 공부까지 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표할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솔직히 새로운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에서 쓰레기로 지탄받거나 지금처럼 살아가는데 치명적인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신이 공부를 통해 상시적으로 무엇이든 알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당신이 새롭게 배우는 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정당한 이유도 없이 당신이나 당신 가족이 부지부식 간에 불효막심한 패륜아 혹은 야만스러운 무뢰한으로 취급받을 수 있어서이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이야? 어떤 놈이 감히 그따위 짓거리를 해? 당장 말해!"

라고 외치는 당신이라면 지극히 정상이다. 만약 누군가가 대면한 채 당신에게 저렇게 말했다가는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오호통재라! 어쩌냐? 안타깝게도 당신이 알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 덕에 당신이 분노하는 저런 상황이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근거도 없는 고려장을 우리 풍습으로 철석같이 믿음으로써 패륜아의 후손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스스로 동이족이라고 칭하면서 중국인들이 규정한 오랑캐를 자처하고 살아가고 있다.

아주 잠깐의 역사 공부로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음에도 당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대가로 부당한 편견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많지 않더라도 가볍더라도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되도록 읽어 부단히 습득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나만의 판단 과정을 합리적으로 거쳐 논리체계를 완성해야 한다.

그것이 남들과 확고하게 구분되는 당신만의 자아체계를 만들어가는 공부이다. 명확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동물과 구분되는 진정한 지적 생명체로써 인간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느꼈겠지만 이 글에서 당신에게 하라는 공부는 고도의 학문을 익혀 위대한 석박사가 되라는 의미가 아니다. 강박처럼 정해진 시간과 분량을 머릿속에 마구 꾸겨 넣으라는 말 역시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다.


그래도 '삶이 고돼서', '먹고살기 바빠서', '애들 때문에'라는 이유로, 모르는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포기하겠다면 굳이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겠다.

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어차피 죽으면 다 똑같다는 말로 자신의 치졸함을 방어하고, 밥만 먹을 수 있다면 개돼지로 살아도 좋다는 개체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당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라.


즐겁게 먹고 자고 싸다가 삶을 마감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어떤가? 당신은 이 사진을 증명사진으로 쓰고 싶은가?


V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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