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현혹시키려는 세상의 유혹을 과감하게 발로 차버려라!
대학 강단에 섰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에게 일관되게 권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제발 그놈의 인물전이나 자기 계발서 좀 읽지 말라는 조언이었다.
내 말이 의아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사람들의 선례를 따르는 것이 왜 나쁜 것인가?", "자기 계발서를 통해 나를 발전시켜 보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라고 따질 수도 있다.
참고 정도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참고만 하면 괜찮은데 마치 그러한 책들에서 읽은 내용이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하는 말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인류의 역사 속에는 아이들 놀이부터 정치, 경제, 예술, 문학, 심지어 전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위인이나 영웅, 혹은 각 사회에서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명칭으로 불리며 기록으로 남겨진 수많은 인물이 존재한다. 거기에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경우와 함께 일상의 영역까지 모범의 선정 범위를 넓히면 본받을만한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아진다.
모범적인 사람으로 인정되는 범위가 어떻든지 간에 그런 인물들과 관련되어 확인되는 공통적 특징들이 있는데, 대중들은 모범적으로 인정받은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 하며, 독선적이고 고집스럽게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으려는 경우를 제외하면 모범적으로 인정받은 인물들도 통상 자신이 살아온 과정이나 행동 방식을 책이나 강연 등의 방법으로 세간에 알리고자 한다는 점이다
'많은 이야깃거리'와 '모범이 되는 사람을 중심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상호 이해관계', 이 두 가지는 모범적인 인물들과 관련된 각종 책들이 끊이지 않고 생산되는 가장 근원적 원인이 된다.
그러나 단언하는데, 모범이 될만하다고 인정된 인물이 들려주는 자신의 차별적 행동이나 생각은 이미 성공이라는 성과를 거둔 가진 자들의 여유로운 콧노래에 불과하다 - 그 사람들이 일부러 빈정거리려고 콧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가볍고 무의미한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성공한 사람의 사례에서 결과론적 교훈을 얻고 아무리 노력한들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는 없다.
모범적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는 극단적이거나 어중간한 이타심 혹은 자만심 중 하나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자만심에 기인한 경우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작용할지 의문이 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이타심이 작용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타적인 사람이더라도 모범적인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본인의 지독한 노력도 있었겠지만 상당한 개인적 운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운이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인위적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범적인 사람 본인도 그 운이 왜, 어떻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따라서 그를 따르는 사람은 불명확한 결과가 예상되는 멍청한 행위에 매진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은 모범적 인물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다.
누가 잘나고 못나고를 기준으로 나눈 다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와 고양이처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본질적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따위의 문구가 붙어있는 책을 보고 성웅 이순신에게 감동한 나머지 아이를 낳자마자 이순신 장군과 완전히 똑같은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며 키웠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자란 아이가 20살이 되었을 때! 그 아이는 과연 이순신 장군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을까?
턱도 없는 소리! 그 아이는 타고난, 이미 정해진 -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 팔자대로 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아이가 위인의 운명을 타고났다면 위인의 면모를 보일 테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모델로 삼은 이순신 장군과 같은 모습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현대 사람이 아니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순신 장군 대신 빌 게이츠로, 빌 게이츠가 외국인이라 안 된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현재 생존해 있는 한국 재벌 회장으로 이름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
어차피 결과는 같으니까 누구를 대입해도 무방하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도 당신을 꼬드기는, 먹기 좋지만 건강에 좋지 않은 설탕덩어리 과자에 불과하다.
과학적으로 빈약한 설명력을 가졌음에도 그럴싸한 논리의 치장으로 뻥튀기된 책들을 접하고는 그 내용대로 추종하게 되면 자기가 정신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맹신적 최면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러운데 그런 객관적으로 비치는 모습을 자각하지 못하고 당사자는 진지하게 헛삽질에 충실한다. 더 웃긴 것은 그렇게 했는데도 성과를 얻지 못하면 자기를 속인 책들을 탓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무능을 한탄한다.
뭐야? 당신 마더 테레사야?
다시 말하지만 제발 착한 척하지 말고 당신을 기만한 그 책을 미워하고 기피해라!
애초에 자기 계발서로 사람이 모두 똑같아질 수 있다고 전제하는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인간이 지구 역사상 모든 생물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치를 가지게 된 것은, 발정기 없이 아무 때고 종족 번식의 시도가 가능해 쥐만큼 빠르게 번식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일관성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특성에 근간한다.
간단히 다시 말해, 상상을 초월하는 생각과 행동을 일삼는 존재가 인간이며 그런 기상천외함 때문에 놀랄만한 혁신이 시도되고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혈액형? MBTI? 정말 개도 웃을 소리다.
만약 인간이 4가지 특성 혹은 16가지 특성으로 유형화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좋은 두뇌를 발전시킬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그 어떤 포유류보다 허약한 체질의 이족 보행의 인류는 진즉 멸종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웃고 넘어갈 재미에 불과한 것을 사회생활에 필수 조건인 양 떠드는 꼴이라니 우습기 그지없다.
자기 계발서의 설명력이 빈약하다는 근거도 명백하다.
어떠한 이론이나 연구도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범위는 고작 20-30%에 불과하다.
나 역시 성격, 신뢰, 열의, 소진, 성격, 탄력성, 주도성 등등 인간의 자기 계발과 관련된 요인들에 관한 연구 논문을 수십 편 권위 있는 학술지에 등재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많은 연구들의 결과들 중에서 설명력 수치가 50%를 넘은 연구는 없었다.
분명히 과학적 추론과 자료 분석, 도구 활용을 통한 명백한 연구였음에도 예외가 훨씬 더 많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연구들이 거듭되고 데이터가 축적되다 보면 지금보다는 아주 약간 더 정밀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정밀해져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론은 나올 수 없다.
정밀해질수록 다른 부분의 차이가 다시 드러나게 될 것이고, 연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인간은 빠르게 다시 변해갈 것이다.
요컨대 당신이 맹신하고 열독 하는 자기 계발서들은 이러한 인간에 대한 연구가 갖는 한계를 명확하게 반영한 자기주장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예쁘게 포장되어 쉽게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이쯤 되면 내 글을 읽던 사람들 중에 일부는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내 지인 중 하나는 자기 계발서의 말대로 열심히 따라 했는 데 성공했더라! 네 말은 틀렸어!”
응? 이런 반문 안 했다고?
반문조차 못한 사람은 반성부터 해라!
당신은 그만큼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 맞다! 자기 계발서를 추종하여 성공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그게 대부분의 사례냐고 재반문하고 싶다. 설마 100명 중 1명이라고 성공한 사례가 없을까?
그런데 100명 중 99명이 실패한 사례가 일반적으로 받아 들어야 하는 기준인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수백만 명이 죽어나가는 전쟁 통에서도 살아남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막대한 부를 치부한 사람들까지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사람의 사례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 추종하는가? 그처럼 자기 계발서를 따라 성공한 사람은 일부에 불과한 '예외적' 사례이다!
예외를 가지고 내 입을 막으려고 하면서 왜 자기 계발서가 주장하는 내용의 예외 가능성은 개념치 않는가?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 계발서가 제시해 준 대로 노력했기에 괄목할 만큼 성공하지는 못했어도 어느 정도 이룬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 이건 정말...
몇 년 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라는 맥락으로 엄청나게 인기를 얻은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내 주위에서도 이 책을 즐겨보았고 친한 친구 한 명은 거의 광신도급으로 이 책을 신봉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도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말을 던지며 내게 자신과 똑같은 실천을 해볼 것을 지나칠 정도로 권한 바 있다. 무척 귀찮았으나 지금도 매우 가까운 친구이기에 물론 그 책을 읽어보았고, 책의 지침대로 평소 가지고 싶었던 초고가의 스포츠카 사진을 실제 벽에 붙여놓고 간절히 나에게 그 스포츠카가 내게 생기기를 기원했었다. 기왕 해보는 것이니 성공해보고 싶었기에 제법 간절히 책이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시간이 흘렀고 당연히 나는 그 스포츠카를 갖지 못했다 - 지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몇 년 후 대형 세단을 갖게 되었는데 내 친구는 그 책의 말대로 딱 떨어지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 책의 말대로 네가 바라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세단이 생긴 것이라며 그 책의 효능이 명백히 확인되었다고 내게 역설하였다.
기가 차는 말 아닌가?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이라는 무의미한 가정에 의한 확신이다!
해당 세단은 내가 노력해서,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50% 정도는 행운이 작용해서 얻은 것이다. 내가 바라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에 세상에 그렇게 무책임한 이야기가 어디 있냐고 그야말로 결과론적으로 짜 맞춘 자기 위로에 불과하다고 친구에게 반문했지만 친구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기까지 꽤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자기 계발서는 이처럼 사람을 무책임한 사람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그럼 나의 주장은 누구도 본받을 필요도 없고, 어떠한 자기 계발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냐?
당연히 아니다. 내가 하고픈 말은 오히려 진짜 자기 계발을 하라는 말이다.
남이 만들고 제시해 준 방법이 내게 바람직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에 준거하는 자기 계발을 강하게 지향하라는 말이다.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이다.
정신이나 신체 역량에 이상이 있는 일부의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 능력을 탁월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 스스로 뭘 잘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인지, 중간에 포기할 인지 이미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알면서 자기가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지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계발 방법이나 행동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즉, 몰라서가 아니라 단지 게으르고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비판보다 남이 해놓은 그럴싸한 이야기를 더 믿는 것이 결국 나를 채찍질하는 것보다 덜 번거롭기 때문에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 하긴 인간들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인간 사회가 완벽하지 않고 다이내믹하면서 재미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더라.
더 길게 쓰면 동어반복이 될 테니 정리하자.
이미 성공한 인물의 스토리는 백날 읽어봐야 당신에게 유익할 것이 없다.
오히려 스트레스와 자괴감만 들 것이다.
근거가 약한 자기 계발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아무리 그러한 책들을 읽고 시킨 대로 따라 해 봐야 아주 가끔, 우연히 들어맞은 일로 잠깐 기쁨을 느끼는 정도 이외에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물전이나 자기 계발서 같은 남의 이야기 말고도 당신이 절차탁마해야 할 내용은 쌓이고 쌓여있다.
부질없이 남의 이야기에 매진할 시간에 당신을 꼼꼼하게 돌아보고 냉정하게 평가해라.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너 스스로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진짜 당신이 할 수 있는 계발에 전념해라.
그게 내가 해주고 싶은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