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따위로 잔혹한 현실을 이기려 하지마라!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판도라의 실수로 봉인해놓았던 모든 죄악과 고통들이 신의 상자에서 빠져나갔고 그 때 상자에 유일하게 남은 것이 희망이었다던가?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말을 참 '희망적'이라며 좋아한다.
희망과 관련된 설화나 명언들도 참 많다.
'희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필요하다.' '어제의 꿈은 오늘의 희망이며 내일의 현실이다.' '큰 희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 '내 비장의 무기는 희망이다.' 등등
그렇다보니 왠지 희망적이라는 말을 들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고, 힘이 솟아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런 것 같은거지 그런 것은 아니다.
희망은 다른 것들보다 게을렀기 때문에 상자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늦었을 뿐인 한 조각의 희망이 당신에게 구원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당신의 허망한 바람에 불과하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의 내용을 봐라.
희망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잔인한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인어공주는 자신이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던 바다 속 공주 생활을 버리고 가족까지 버린 채 자신의 '희망'대로 인간과 같은 두 다리를 얻었다. 대신 목소리를 잃었지만 왕자와의 사랑을 갈망했고 행복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결국 그 '희망'은 무참하게 깨어지고 인어공주는 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희망이 행복의 근원으로 작용한 부분이 있는가?
그놈의 희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사랑을 위해 순애보 어쩌구저쩌구는 겉치장이고~
인어공주 사례 하나만으로 너무 비약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대로 이 사례 하나만으로도 희망이 절대적이라는 명제를 깨버리는 것이 아닌가?
36년간 우리 민족의 희망이 부족해서 일제의 탄압이 이어졌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애초에 희망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는데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허상을 까내리기 위해 멋들어지게 괴테가 '파우스트'의 한 문장인 '희망은 인간의 가장 큰 적 중 하나'라고 얘기한 것까지 인용할 필요도 없다.
위대한 철학가의 사조를 빌지 않아도 우리가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다.
아이러나하게도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어렷품히 생각할 때부터 생긴다.
고통을 견디고자 인간이 만들어내는 마약과 같은 것이 희망이라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던 희망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오랫동안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 큰 절망에 빠지게 된다. 희망이 마약과 같기 때문에 희망이 좌절되었을 때 찾아오는 절망은 처음 희망을 품게 했던 절망보다 훨씬 크고 강하게 다가온다.
과장이 아니라 희망 끝에 맛보는 절망은 극복 불가능의 수준이다.
게다가 이런 일이 드물게 나타나느냐? 전혀 드물지 않다.
오히려 희망대로 이루어지기보다 희망이 좌절되고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오죽했으면 2000여년 전에 살았던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도 항상 실현되지 않는 것이 자신의 희망이라고 푸념했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늘도 '나는 희망을 가져본다'라는 망상적 헛소리를 사람들은 지껄이곤 한다.
아니! 학습효과도 없는 것인가? 희망은 당신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지긋지긋한 희망! 희망!
하긴 앞서 말한대로 희망이 좌절되기만 해서 푸념까지 늘어놓았던 오비디우스가 그래도 자신은 계속 희망을 품고 살아가겠다고 헛소리를 한 것보면 인간은 참 이해되지 않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희망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중환자에게 잠깐이나마 고통을 잊으라고 투여하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에 불과하다. 고작 잠깐의 숨쉴 여유만 줄 뿐이다. 어쩔 땐 너무 찰나여서 그나마 실감도 나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주위에서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가져라'고 무의미하기 그지 없는 말을 굉장히 진지한 조언이나 격려랍시고 마구 내뱉는다.
하~ 정말 정색하고 말하는데! 그런 사람이 당신 주위에 있다면 당장 당신의 인간관계 목록에서 빼버려라!
당신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이다. 아니 당신을 망칠 수 있는 존재이다.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현실을 직시하라는 충고를 할 것이다.
왜냐고?
애초에 희망은 긍정이라는 말과 맞지 않는다.
긍정이라는 단어의 원 뜻을 생각해봐라. 희망을 가져야 할 상황은 이미 좌절이나 실패를 직면한 상황이다.
그러한 현재를 수용하지 않고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 희망인데 어떻게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긍정과 맞을 수 있는가?
긍정이면 긍정, 희망이면 희망 하나만 가져야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무책임한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한 마디 내깔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놓고 그 사람은 마치 자기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자기만족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처럼 무책임한 사람이 당신의 인생에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겠는가?
과감하게 당신에게 조언한다.
잔혹하고 어려운 고통에 직면하면 희망 따위 갖지 말고 현실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고통을 겪으며 이겨내라!
인간이 어릴 적 면역체계가 미흡할 때 흙장난이나 야외활동으로 가볍게 아프고 중하지 않은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내성을 얻듯이 고통의 현실을 있는 그 자체로 수용하고 견뎌 이겨내야 한다.
많이 아프고 힘들겠지만 헛된 망상적 희망으로 현실을 잊으려고 해봐야 현실이 바뀌는 일은 없다.
차라리 이를 악물고 견디는 인내력을 키우는데 전념해라. 마음을 굳건하게 먹고 독하게 견뎌야 한다.
물론 면역체계가 타고나길 약하게 타고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심리적으로 고통에 대한 내성이 강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내 글을 읽자마자 그쪽 관련 전문 상담자를 찾아 고도의 훈련을 받아라!
그래도 안 된다면 다시 태어나던지 신에게 의지하던지 내가 어떻게 해줄 문제가 아니다.
재차 말하지만 현실이 뻑뻑하다고 부질없는 희망을 갖는 순간 당신은 더 큰 고통을 미래에 맛보게 될 것이다.
"몽둥이만큼 바라지만 바늘만큼 이루어진다.", "희망만으로 사는 사람은 음악 없이 춤추는 것과 같다." 등과 같이 해외의 여러 속담들은 희망을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역경은 희망에 의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역경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여 받아드리고 그를 이겨내려고 하는 순수한 당신의 의지로 이겨내는 것이지 희망 따위는 오히려 중간중간 역경에 무너지게 만들 여지가 더 많다.
당신은 이러한 비효율을 왜 굳이 선택하려고 하는가?
희망 따위가 아니더라도 당신에게는 고난을 이겨내는 인내심을 만들어줄 의지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막연히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이 아닌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역량을 키워주는 공부이고, 자신을 강화시키는 자기대화이다.
희망은 비극의 끝이 아닌 더 큰 비극의 서곡이다. 희망은 당신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다.
희망을 버리고 현실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현실을 극복할 힘을 키우라!
그걸 나는 당신에게 '희망'한다.
흠... 마지막 말은 글 말미에 그냥 해본 나름 고도의 언어유희니까 그냥 웃고 넘어가주길 바란다.